'한겨울 흑백의 계절로 돌아간 듯'…자연 복원 필요
(삼척=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화마가 휩쓸고 간 삼척 도계읍 상공에서 바라본 산등성이는 푸르던 신록 대신 시커먼 숯검정이 돼 있었다.
11일 무인헬기(드론)를 통해 들여다본 산불 현장은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처참했다.
도계읍은 이름 그대로 백두대간 골짜기에 들어선 지역이다.
과거 기찻길도 지그재그(스위치백철로)로 운행했을 정도로 깊은 협곡에 자리 잡고 있다.
드론을 통해 새의 시각으로 조감해 보니 산세가 깊고 험준해 산불이 나면 진화대 진입 자체가 어렵게 보였다.
계곡을 타고 부는 협곡풍은 불길을 키우는 풍로 역할을 한 듯했다.
지난 6일부터 발생한 산불로 270㏊의 피해가 발생한 도계읍 건의령 주변.
삼척과 태백을 잇는 백두대간 고갯길을 따라 이어진 건의령은 인근 탄광의 저탄장같이 검은 땅덩이였다.
나흘째 이어진 불에 삼척에서 발화된 불은 건의령을 넘어 태백으로 향했다.
그 깊은 화상의 상처가 고스란했다.
5월의 푸름을 뽐내던 백두대간은 마치 융단 폭격을 맞은 듯 풀 한 포기 남아 있지 않았다.
곳곳이 생채기 투성이다.
이맘때면 장관을 연출하던 초록의 산림은 까만 잿더미 이불을 뒤집어썼다.
무성하던 풀과 나무는 자취를 감췄다.
울긋불긋 철쭉 동산은 한겨울 흑백의 계절로 되돌아갔다.
건조한 날씨와 강풍, 흙먼지, 지독한 연기, 갈기를 세우던 불길로 숨조차 쉬지 못하던 현장은 최근 내린 단비에 풀이 꺾였다.
구세주처럼 내린 비는 바람을 타고 공중제비를 하며 능선을 타고 넘던 망나니 불씨를 죽였다.
재발화의 우려는 남아 있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진화에 나선 사람들의 사투에 화기가 누그러들었다.
산간 곳곳에 자리 잡은 마을은 밤새 호스 물을 뿌리며 불은 잡은 주민들은 이제야 한숨을 돌렸다.
타버린 농작물이나 농기계를 점검하느라 이리저리 분주한 모습이다.
늘 아침마다 마주하던 앞산이며, 나무 한 그루까지 오손도손 이웃으로 살던 이곳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자연이 스스로 복원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른 땅에 꽂은 부지깽이같이 볼품없이 변해버린 저 아름드리 소나무는 나무 끝 꼭대기 줄기만 녹색이다.
습기를 잃은 민머리 산에서는 흙바람이 불고,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주민들 속은 더 타들어 갔다.
하지만 잿더미 속에서도 견내내고 살아남은 풀뿌리는 자연이 안겨주는 희망의 메시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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