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MT서 동성 간 '치약 장난' 성추행 첫 인정

입력 2017-05-11 08:55  

대학 MT서 동성 간 '치약 장난' 성추행 첫 인정

19시간 밤샘 마라톤 국민참여재판서 건대생 2명·대학원생 1명 유죄

재판부, 행위 당시 친분 주목…친분 없어 성적 수치심 가능

(의정부=연합뉴스) 김도윤 기자 = 대학 MT에서 술에 취해 잠이 든 동성 신입생의 성기 주변 등에 치약을 바른, 이른바 '치약 장난'에 처음으로 성추행 죄가 적용돼 유죄판결이 나왔다.

지난 10일 의정부지법 1호 법정. 앳된 얼굴의 대학생 노모(20)씨와 하모(23)씨, 그리고 대학원생 이모(24)씨 등 3명이 배심원 앞에 섰다.


이들은 지난해 3월 12일 오전 2시 50분께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로 학과 MT를 가 펜션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잠을 자던 신입생 A(21)씨의 상의를 걷어 올리고 하의를 내린 뒤 배와 성기 주변에 치약을 바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은 그동안 MT나 수학여행 등에서 학창시절 추억거리나 짓궂은 장난쯤으로 여겨 온 행동에 성추행 혐의가 적용된 첫 사례여서 큰 관심을 받았다.

형사합의13부(안종화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노씨 등이 사회에서 통용되던 행동이었던 만큼 일반인의 판단을 받아보기로 한데 따른 결정이다.

판례가 없는 사건이다 보니 검찰과 변호인은 배심원 선정부터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통상 배심원 선정에 1시간 30분가량 소요되나 이날 재판에서는 양측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배심원을 잇따라 기피, 배심원 9명과 예비 배심원 1명이 선정되기까지 평소보다 1시간이나 더 걸렸다.

재판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 시작됐다.

검찰은 아예 남성을 상대로 한 성폭력의 시금석이 되는 중요 사건으로 규정했다. 재판장도 배심원들에게 "이례적으로 배심원 선정에 1시간이나 더 소요됐다"며 "그만큼 무게 있는 재판이고 법정형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사건"이라고 신중한 판단을 당부했다.

재판의 쟁점은 추행 고의 여부, 추행에 의한 상해 여부, 동영상 촬영의 성적 수치심 유발 의도 여부 등 세 가지였다.

검찰 측은 유사 판례와 MT 당시 동영상 등 다양한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성추행 죄와 이에 따른 피부염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상해를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노씨 등의 변호인은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할 고의가 없어 추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같은 과 학생을 증인으로 세우고 학창시절 추억거리로 용인돼 온 사회 통념 등을 주장하며 배심원에게 무죄를 호소했다.

자칫 장난으로 치부될 수 있는 행위로 평범한 20대 3명이 실형을 받을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어서 양측이 언성을 높이는 등 날 선 공방을 계속했고 재판은 하루를 넘겨 11일 오전 4시 반까지 19시간이나 걸렸다.

배심원과 재판부는 '치약 장난'이 이뤄진 시기,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 주목했다. A씨는 입학 10일 만에 학과 MT에 참석한 데다 동기생인 노씨는 얼굴만 아는 정도이고 하씨와 이씨는 MT에서 처음 알게 돼 친분이 없었다.

친분이 있었다면 A씨가 이 같은 치약 장난을 당했더라도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을 수 있다는 취지다.

더욱이 하씨가 이 모습을 동영상 촬영하려다 자신의 휴대전화 배터리가 없자 옆에 있던 학과생의 휴대전화까지 빌렸고 이 동영상을 술자리에서 보며 웃고 떠들고자 촬영했다는 점에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의도가 있다고 봤다.

이에 배심원 9명 전원은 성추행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면서도 상해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로 봤다.

재판부도 배심원의 평결을 반영, "A씨의 피부염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성추행과의 인과 관계를 단정하기 어렵다"며 상해를 유죄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재판부는 성추행 혐의와 동영상 촬영 혐의만 유죄로 판단, 이씨와 하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노씨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또 이들에게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 24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kyo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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