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취사, "정상酒 원샷"…꼴불견 등산객에 국립공원 몸살

입력 2017-05-13 07:23  

계곡 취사, "정상酒 원샷"…꼴불견 등산객에 국립공원 몸살

올 4월까지 전국서 691건 적발…불법취사·샛길출입·흡연·불법주차 順

자리 펴고 앉아 술판, 고성 방가도 여전…'민폐' 야간 산행도 근절 대상

(전국종합=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지난달 30일 오후 2시께 북한산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 숨은벽 구간을 순찰하던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은 암릉에 숨어 몰래 밥을 짓던 A씨를 적발했다.





그는 등산객이 많은 대낮인데도 바위틈에 몸을 숨긴 채 태연하게 밥을 짓고 있었다. 국립공원에서는 취사 등 불을 피우는 행위 자체가 금지돼 있다. 성냥이나 휴대용 가스레인지 같은 인화물질 반입도 안 된다.

그러나 A씨는 당황하거나 창피해 하는 기색 없이 당당했다. "규정을 잘 몰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보다 이틀 앞선 지난달 28일 인접한 보현봉에서는 어둠을 뚫고 산을 오르던 B씨 등 2명이 단속반에 걸렸다.

입산시간 지정제가 운영되는 북한산은 4∼10월 오후 4시 이후 입산이 금지된다. 날 저문 뒤 발생하기 쉬운 안전사고를 막고, 밤에 주로 활동하는 야생동물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일부 몰지각한 등산객들은 야간산행한 것을 대단한 전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벌린다. 산 좀 탄다는 사람치고 야간산행 무용담 한두 가지 없는 사람이 드물 정도다.

등산하기 좋은 계절이지만, 정작 산에서 만난 '꼴불견 등산객' 때문에 기분을 망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

샛길(등산로가 아닌 곳) 출입은 예사고, 바싹 마른 산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몰래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경우를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예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삼삼오오 자리를 펴고 앉아 술판을 벌이거나 큰 소리로 건배 구호를 외치는 볼썽사나운 장면도 아직 흔한 풍경이다.






13일 국립공원 관리공단에 따르면 올해 1∼4월 전국의 국립공원에서 적발된 불법·무질서 행위는 691건이다. 적발 사례가 이 정도니, 실제 산 속 상황이 얼마나 심각할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기를 굽거나 밥을 짓는 불법취사가 311건(45%)으로 가장 많고, 샛길 출입과 흡연이 127건(18.4%)·69건(10%)으로 뒤를 잇는다.

샛길 출입 중에는 멸종위기 동식물을 위해 설정한 특별보호구역이나 백두대간 마루금을 드나든 사람도 14명 포함돼 있다.

주차장이 아닌 곳에 슬그머니 차를 세운 얌체 주차 39건과 불법 야영 26건도 단속됐다.

인화물질을 반입하거나 야간산행에 나섰다가 단속된 경우도 각각 8건과 6건이다. 약용식물 채취는 물론, 심지어 무속행위를 하다가 걸린 사례도 있다.

공단 관계자는 "캠핑문화 확산 등에 편승한 불법취사나 야영 등이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라며 "적발되면 대부분 '규정을 몰랐다'고 오리발을 내밀지만, 조회해 보면 한 번 이상 위반 경험이 있는 상습범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불법 취사나 야영 등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자칫 산불 등 엄청난 재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자세해 달라"고 당부했다.

등산객 부주의 때문에 아름다운 국립공원이 불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2012년 세계자연유산인 한라산 사제비오름에서는 등산객 담뱃불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산불이 발생, 순식간에 2㏊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 불로 수십년된 송림을 비롯해 병꽃나무, 꽝꽝나무, 조릿대 등이 훼손됐다.

작년 속리산과 소백산에서도 등산객 부주의나 밭두렁 소각 등에 의한 불이 나 소중한 산림을 태웠다.







국립공원에서 불법·무질서 행위를 하다가 적발되면 자연공원법에 따라 5만∼1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사안이 경미한 경우는 지도장이 발부되는데, 이 역시 국립공원 전자결재시스템에 올라 1년 동안 위반 기록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연휴가 이어진 이달에도 전국의 국립공원에서는 160건의 불법·무질서 행위가 적발됐다. 이중 93명은 과태료 처분을 받고, 67명한테는 지도장이 나갔다.

꼴불견 등산문화를 뿌리 뽑기 위해 국립공원 측은 최근 드론과 무인 계도시스템까지 동원해 공원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현재 전국 국립공원에는 34대의 드론이 배치돼 불법행위 단속과 생태계 모니터링, 조난자 수색 등에 활용된다. 사람 눈에 띄지 않더라도 고성능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의 감시까지 피하기는 어렵게 됐다.

샛길 출입자가 많은 곳에는 '출입 금지구역'을 알리는 경고방송을 내보내면서 위반 영상을 단속반에게 자동으로 전송해 주는 무인 계도시스템도 설치했다.

속리산의 경우 지난해 취약지역 6곳에 이 시스템을 설치한 후 샛길 출입이 크게 줄었다.

공단 관계자는 "지속적인 홍보 등으로 불법·무질서 행위는 전반적으로 줄고 있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연을 훼손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꼴불견 산행이 적지 않다"며 "환경을 보호하고 이웃을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어 "봄철이 되면 급증하는 음주산행 역시 보는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행위"라며 "'한 잔쯤이야 어때' 하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정상주', '하산주' 같이 비뚤어진 음주문화도 없애야 한다"고 덧붙였다.

bgi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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