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 콘텐츠, 경쟁자인가 동반자인가"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프랑스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옥자'는 '더 메예로위츠 스토리스'(미국 노아 바움백 감독)와 함께 미국의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가 투자·배급하는 작품이다. 두 영화는 오는 17일 개막하는 70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칸영화제가 70년 역사상 처음으로 넷플릭스 영화에 경쟁 부문의 문호를 개방하자, 프랑스 극장협회(FNCF)가 반발하고 있다. 극장 개봉을 전제로 하지 않은 작품을 초청하는 것은 "영화계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넥플릭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반발한다.
이번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프랑스 극장업계와 넷플릭스 간 밥그릇 싸움으로 비친다. 그러나 좀 더 넓게 보면 '영화의 개념을 어디까지 볼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화두를 영화계에 던졌다는 분석이다.
◇"기존 영화 질서 어지럽혀" vs "기득권 지키려 새 산업 배척"
두 작품은 처음부터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영화다. '옥자'의 경우 국내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라는 특수성 때문에 극장 개봉하지만, 다른 국가에서는 6월 28일 온라인으로 동시에 서비스된다.
프랑스에서는 극장산업 보호를 위해 극장 상영 후 3년 뒤에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 극장협회는 관련법을 근거로 넷플릭스에 두 작품을 프랑스 전역에서 상영할 것을 요구했다.
칸영화제 집행위원회가 나서 극장 상영 문제를 넷플릭스와 협의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집행위는 지난 10일 '옥자'와 '더 메예로위츠 스토리스'는 예정대로 초청하되, 내년부터는 프랑스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만 경쟁 부문에 초청하기로 관련 규정을 바꿨다.
이로써 갈등은 봉합되는 듯 했다. 그러나 하루 뒤인 11일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NC)가 두 작품에 대해 프랑스 내 극장에서의 임시 상영을 불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은 다시 불거졌다.
넷플릭스는 지난달 13일 경쟁 부문 발표 이후 파리 기반의 배급회사를 통해 두 작품의 임시 상영 허가를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시 상영 허가를 받으면 프랑스에서 최대 1주일 동안 두 영화를 6회가량 상영할 수 있다.
버라이어티 등 외신들은 "넷플릭스가 영화제 측과 프랑스 극장업계를 달래기 위해 제한적인 상영을 한 뒤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국립영화센터는 "두 영화가 좀 더 광범위하게 프랑스 극장에서 상영되길 기대한다"며 임시 상영 허가를 거부했다.
넷플릭스 측은 "프랑스 영화계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을 배척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넷플릭스, 경쟁자인가 동반자인가
프랑스가 넷플릭스에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프랑스 영화산업의 특수성 때문이다.
프랑스는 영화의 탄생지이면서 20세기 초반 영화산업의 구도를 처음 만든 곳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프랑스는 영화를 오락이 아니라 전통적인 예술로 접근한다"면서 "영화에 대한 애착이 가장 강한 나라가 프랑스"라고 설명했다.
프랑스는 특히 극장산업이 발달해있다.
노철환 인하대 연극영화과 교수는 "프랑스 내 웬만한 도시에서는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극장이 많이 있다"면서 "극장산업이 무너지면 프랑스 영화인들도 살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특히 프랑스는 극장을 통해야 영화가 대중과 비평가들로부터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고, 영화는 이 평가를 토대로 다른 상품화나 TV 등 상영 경로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미국은 국토가 넓어 극장에 가려면 무조건 차를 타야 한다. 이 때문에 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다.
전찬일 평론가는 "프랑스 극장업계의 반발은 그간 프랑스가 걸어온 행보를 보면 당연한 반응"이라면서 "그러나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을 단순히 밥그릇 싸움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영화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는 "이번 갈등은 전통적인 영화 배급방식과 새로운 배급방식의 충돌"이라면서 "스트리밍 콘텐츠를 경쟁자로 볼 것인가, 동반자로 볼 것이냐는 화두를 영화계에 던진 것"이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보다 인터넷이 더 발달한 한국에서도 넷플릭스와 같은 배급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영화의 개념을 어디까지 볼 것인가라는 문제와 직결된다. 넷플릭스가 굳이 칸영화제에 두 작품을 출품한 것은 영화로서 콘텐츠를 인정받고,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한 차원일 것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영화의 다양성 시대가 왔다"면서 "과거 무성영화 시대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갔을 때도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사람들이 있었던 만큼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영화의 관점을 넓게 가져가야 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fusionj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