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포털업계는 사용료 부담, '토종 업체 역차별' 반발
업체 간 갈등에도 미래부 기준 제시 없어…"소비자만 불편" 비난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SK브로드밴드(SKB) 사용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페이스북 접속 장애는 단순 해프닝이 아니다.
이 사건은 페이스북 같은 외국계 콘텐츠 사업자(이하 외국계 CP)가 국내 인터넷망 업체와 망 비용 문제로 갈등을 빚으면서 불거진 첫 이용자 피해 사례다.
문제는 외국계 CP가 국내 인터넷망에서 막대한 트래픽을 발생시킬 때 이에 대한 비용을 내야 할지에 관한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유튜브와 페이스북처럼 국내 사용자가 많은 '메이저' 외국계 CP는 막강한 영향력을 앞세워 이런 비용을 안 내는 경우가 많다.
유튜브·페이스북 등이 초고화질(UHD) 동영상·가상현실(VR) 등 대용량 데이터 전송이 불가피한 방향으로 서비스가 진화하며 한국 인터넷망 업계에서는 '네트워크 부담만 엄청나게 주며 무임승차한다'는 불만이 급등하고 있다.
외국계 CP와 인터넷망 기업이 계속 망 비용 문제로 다툼을 벌이면서 제2, 제3의 페이스북 접속 장애 사고가 터져 엉뚱하게 이용자가 불편을 겪는 사태가 벌어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네이버·카카오·아프리카TV 등 국내 CP는 망 사업자에 트래픽 비용을 빠짐없이 낸다. 이 때문에 이번 논란은 '토종 업체 역차별'이나 '글로벌 CP의 갑질' 문제로 커질 공산이 작지 않다.
◇ "외국 동영상 열풍이 논란 키웠다"
17일 IT(정보기술) 업계에 따르면 외국계 CP의 망 무임승차 논란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대세가 되면서 본격화했다.
외국계 CP의 서비스가 사진·텍스트 중심이던 시절에는 국내 이용자가 국제 회선을 타고 나가 한국 밖의 CP 서버에 접속해 콘텐츠를 보면 됐다.
외국계 CP가 우리 망에 부담을 주는 형태가 아니었던 만큼 현재의 망 비용 논란도 없었다. 이렇게 국내 이용자가 국제 회선을 쓰면 해당 망 사용료는 한국과 외국의 인터넷망 사업자가 나눠 정산한다.
그런데 유튜브 같은 외국 동영상 서비스가 2000년대부터 빠르게 인기를 얻으며 얘기가 달라졌다.
사용자가 국제 회선을 타고 외국의 CP 서버를 접속하는 방식은 속력이 느리고 정체도 많아 동영상이 끊기고 버퍼링(동영상을 불러오는 과정)이 길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이 때문에 인터넷망 사업자와 주요 외국계 CP는 한국에다 캐시(cache) 서버를 설치하고 국내 회선을 통해 서비스하는 대안을 택하기 시작했다.
캐시 서버는 한국 사용자가 많이 보는 동영상 콘텐츠를 미리 저장하는 전산 설비다. 이렇게 하면 외국의 본사 CP 서버까지 가지 않아도 빠르고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즐길 수 있게 된다. 한국에서는 2011년 캐시 서버를 설치한 유튜브가 첫 사례다.
캐시 서버는 한국 인터넷 회선을 쓰는 설비인 만큼, 여기서 발생한 트래픽 양에 따라 인터넷망 사업자에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
그런데 캐시 서버를 놓은 외국계 CP 1호인 유튜브는 KT·SK브로드밴드(SKB)·LG유플러스 등 3대 인터넷망 사업자를 압박해 망 비용을 면제받거나 거의 내지 않도록 했다.
당시 유튜브 측은 캐시 서버로 인터넷망 사업자가 받는 혜택이 매우 큰 만큼 망 비용은 감면해 달라는 논리를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유튜브를 캐시 서버 없이 국제 회선으로 접속하게 하면 속도가 느려 이용자 불만이 커지고 막대한 국제 회선 비를 내야 하는 만큼 인터넷망 사업자로서는 망 비용을 안 받아도 '남는 장사'라고 주장한 셈이다.
◇ 유튜브 사례가 족쇄…첫 단추 잘못 채웠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 외국계 CP가 인터넷망 업체에 요금을 어떻게 내야 한다는 것에 관해 법규나 가이드라인은 없다. 업체 간 계약에 따라 공짜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유튜브 사례는 이후 국내에 캐시 서버를 도입한 페이스북에 큰 영향을 미쳤다. 페이스북은 캐시서버를 이미 설치한 KT에는 망 비용을 내고 있지만, 현재 캐시서버 설치 방안을 협상하고 있는 SKB와 LG유플러스에는 유튜브의 전례를 거론하며 망 비용 면제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B는 작년 12월 '망 비용은 꼭 내야 한다'고 강변하다 페이스북과 협상이 결렬됐고, 이후 적잖은 자사 이용자가 페이스북을 접속할 때 서비스가 느려지거나 끊기는 문제를 겪었다.
이 접속 장애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지만, 국내 인터넷 업계에서는 페이스북이 SKB 측으로 가는 자사 콘텐츠의 전송 경로를 변경해 트래픽 정체를 일으켰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국내 인터넷망 업계의 한 관계자는 "페이스북은 페이스북 라이브 등 동영상 서비스를 강조하면서 지금도 유튜브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트래픽 부담을 주고 있다"며 "차세대 서비스인 VR까지 하면 데이터가 지금의 4∼5배 수준으로 치솟을 전망이라 망을 공짜로 쓰게 한다는 건 억지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애초 업계가 유튜브와 계약하면서 첫 단추를 잘못 채운 꼴이 됐다. 글로벌 CP가 한국에서 공짜 인터넷을 쓰는 사례가 자꾸 늘면 이득은 외국 업체가 챙기고 우리 IT 생태계는 빈곤해지는 문제가 커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미래부 "각사 계약에 맡겨야"…'외국 CP가 갑' 지적도
미래부는 이 사안과 관련해 법규·가이드라인 제정 등을 통해 개입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CP와 인터넷 사업자가 협상과 계약을 통해 과금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국제적 관례인 만큼 규제 검토는 아직 이르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구글·페이스북 등의 거물 CP가 협상 테이블에서는 인터넷망 사업자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어 기업 간 계약에만 맡겨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용자들은 유명 서비스가 느려지거나 끊기면 보통 서비스 운영사보다 인터넷망을 탓하는 만큼, 거물 CP가 '접속 장애' 등의 카드를 들고 인터넷망 업체를 압박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국산 포털 및 사회관계망서비스(SNS)들이 '왜 외국계 CP만 무료 인터넷 특혜를 주느냐'며 반발하는 것도 우려할만한 대목이다.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한국 업체들은 각사가 매년 수십억∼수백억원의 망 비용을 내는 만큼 '역차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 동영상 서비스는 화질을 끌어올리거나 스트리밍 효율을 높이려면 트래픽이 늘면서 망 비용이 뛸 수밖에 없는데, 외국 CP는 이런 부담도 없어 공정 경쟁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포털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요금은 다 내거나 아니면 다 안 내는 것이 상식인 만큼 이 상황은 명백히 비정상이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는 한국에 진출해 버젓이 사업하는 서비스인 만큼 망 비용을 면제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ta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