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잔인한가"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소설가 한강(47)이 어린 시절 들은 5·18 광주민중항쟁과 스웨덴 동화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얽힌 기억, 자신의 소설 '소년이 온다'(2014) 집필 당시 일화를 소개했다. '소년이 온다'는 계엄군에 맞서다 죽음을 맞게 된 중학생 동호와 주변 인물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작품이다.
창비는 5·18 광주민중항쟁을 37돌을 앞두고 한강이 지난 2월3일 '노르웨이 문학의 집'에서 한 강연 전문을 16일 블로그에 실었다. 한강은 1983년 국내에 출간된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1980년에 읽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연약한 소년 칼과 자유를 지키려고 악에 맞서는 사자왕 요나탄이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대면하는 모험을 그린 판타지 동화다. 한강은 자신의 내면에서 1980년 광주와 이 작품이 연결돼 있었던 탓에 책을 읽은 때를 착각했다고 말한다.
1980년 1월 부친인 소설가 한승원을 따라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한 한강은 2년 뒤 아버지가 광주에서 가져온 사진첩을 본다. 5·18 생존자들이 1980년 광주의 참상을 담아 비밀리에 유통한 책이었다.이듬해 "이상한 열정"으로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으면서는 동화 속 독재자, 그가 조종하는 살인의 화신, 그에 맞서 연약한 사람들이 연대하는 과정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어느새 해가 져서 캄캄해진 내 방의 서늘한 벽에 기대앉아 오래 울었던 것을 기억한다. 알 수 없었다.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가? 그들의 사랑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잔인한가?"
한강은 당시 품었던 의문에 이렇게 답한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는 거라고. 존엄을 믿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우리의 고통이야말로 열쇠이며 단단한 씨앗이라고."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 자료를 읽으면서 "내면의 투쟁을 치르고 있었다"고 말한다. 작가는 "필사적으로 그 폭력 앞에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던 연약한 몸짓들에 대해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며 소설을 포기할 생각도 했다고 기억한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토록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한강은 전남도청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한 시민군의 이 일기를 읽고 소설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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