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 뚫은 파격 인사…보수성향 강한 보훈처 개혁 카드
유방암 투병 이유 강제퇴역에 맞서 승소…진보신당 비례대표 출마도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국가보훈처 사상 첫 여성 처장에 임명된 피우진 예비역 중령(61)은 여군 헬기 조종사라는 타이틀 뿐 아니라 길고 긴 법정투쟁 끝에 복무 중 장애를 얻은 군인들에 대한 부당한 전역조치 관행을 끊어낸 '철의 여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79년 소위로 임관해 특전사 중대장을 지냈고, 이후 육군 항공병과로 자원해 고된 훈련을 거쳐 1981년 여성 헬기 조종사가 됐다. 육군항공학교 회전익 14기인 그는 여군 1호 헬기 조종사인 김복선 예비역 대위보다 7개월 늦은 1981년 8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비행교육을 받았다.
육군 205 항공대대 헬기 조종사를 지내며 남성 군인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여건에서 스스로 힘으로 '유리 천장'을 뚫고 여성이 처음 가는 길을 개척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02년 유방암에 걸려 투병하다가 병마를 이겨냈지만, 군 신체검사에서 장애 판정을 받고 2006년 11월 강제 퇴역됐다. 국방부의 강제 퇴역 조치에 맞서 인사소청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피 중령의 강제 퇴역 조치는 남성 중심의 군대 문화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군의 지위 문제를 국민적인 관심사로 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결국 국방부는 소송에서 이긴 그녀의 손을 들어주고 2008년 5월 복귀 명령을 내렸다. 이후 2009년까지 육군항공학교 교리발전처장을 지냈다.
강제 퇴역 조치 이후 여러 차례 소송을 통해 군으로 되돌아오기까지 과정은 한 여성의 승리라는 차원을 넘어 복무 중 심신장애를 얻을 경우 원치 않은 전역을 해야 하는 우리 군의 관행에 쐐기를 받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군내에서조차 피 중령 사건이 군의 재량권 남용과 자의적 차별행위를 공론화해 이를 바로잡는 계기가 됐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방부는 피 중령 사건이 법원으로 확대되자 2007년 8월 '심신장애 군인 전역 및 현역복무 기준'을 전면 개정해 심신장애 1~9급으로 판정되어도 본인 희망시 각 군 전역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계속 복무할 수 있도록 바꿨다.
그는 2006년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자서전을 펴내 여군으로서 경험담과 암 투병, 강제 퇴역 조치에 맞서 싸운 내용 등을 담아냈다. 여군이 처한 상황과 부당한 대우에 맞서 싸운 '여전사'의 기록이란 서평도 있었다.
그는 이 저서에서 대위 시절 여군 하사(부사)관을 군사령관 술자리에 보내지 않아 군사령관의 노여움을 산 일, 2000년 사단장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 여군 장교를 돕고자 개인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언론 인터뷰에 응한 일화 등을 소개했다.
2008년 진보신당 제18대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출마한 경험도 있다. 당시 그는 "진보신당의 심상정 의원 같은 여성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여군 예비역 문재인 대선후보 지지선언 회견에서 지지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피우진 내정자는 "2006년 유방암 수술 후 부당한 전역조치에 맞서 싸워 다시 군에 복귀함으로써 온 여성들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훈과 안보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모든 국민이 함께 뜻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국가보훈처는 국민의 마음을 모으지 못했다"면서 "온몸으로 나라 사랑의 의미를 보여준 신임 보훈처장의 임명으로 국가보훈처가 국민과 함께하는 보훈처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리 천장'을 뚫은 파격적인 인사라는 평을 받는 피우진 내정자는 그간 보수 편향이 강한 부처로 꼽혀온 보훈처를 개혁하는 데 앞장설 것으로 보인다.
보훈처는 박승춘 전 처장 재임 시절 '나라 사랑 교육'이란 이름 아래 국민 안보교육에 치중해 독립유공자와 제대군인 복지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청주(61) ▲청주대 ▲건국대 대학원 체육교육학 ▲소위 임관 ▲헬기 조종사 ▲중령 예편 ▲진보신당 제18대 국회의원 후보(비례대표) ▲육군항공학교 교리발전처장
three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