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크루즈선, 디젤승용차 350만대분 이산화황 배출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미세먼지 때문에 마음 놓고 숨쉬기 힘든 세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세 번째 업무지시를 통해 노후 화력발전소를 일시 가동 중단하기로 했다.
미세먼지를 줄이겠다는 새 정부의 정책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처이다.
중국발 황사와 미세먼지가 수시로 덮치는 서울보다 바닷바람이 강한 부산의 공기 질이 훨씬 좋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초미세 먼지에서는 부산이 서울보다 못하다.
2015년 기준 초미세먼지(PM2.5)의 연평균 농도가 부산은 26㎍/㎥로 서울의 23㎍/㎥보다 높다.
2016년 네이처지는 부산항을 중국의 7개 항만,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항, 싱가포르와 함께 '세계 10대 초미세먼지 오염항만'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부산과 같은 항만도시는 서울 등 내륙도시보다 질소산화물 농도는 높지 않지만, 황산화물과 미세먼지 농도는 상대적으로 높다.
황산화물은 선박 연료에 포함된 황이 연소과정에서 산화한 것으로, 연료 내 함량에 따라 배출량이 달라진다.
국내에서는 울산, 부산, 인천 순으로 농도가 높다.
선박의 주 연료인 벙커C유의 황 함유 기준은 3.5%로 육상에서 사용하는 경유보다 훨씬 높다.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전국 모든 지역에서 경유는 0.1% 이하의 황을 함유하도록 규제를 받는다.
특히 차량용 경유의 황 함유 기준은 0.001%이다.
선박과 경유자동차가 동일한 크기의 엔진에서 동일한 양의 연료를 연소할 경우 선박이 배출하는 황산화물의 양이 자동차의 3천500배에 해당하는 셈이다.
선박의 엔진은 자동차보다 엄청나게 크며 연료소모량도 수백 배나 많다.
초대형 크루즈선의 경우 시간당 연료소모량이 약 1만ℓ에 이른다.
이 때문에 디젤승용차 350만대에 해당하는 이산화황을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항에는 연간 컨테이너선 1만5천여 척, 일반화물선 5천여 척, 원양어선 1천100여 척, 수리선박 1천300여 척 등 2만3천 척 가까운 선박이 드나든다.
이 선박들이 내뿜는 황산화물의 양은 실로 엄청나다.
부산의 초미세먼지는 도로 외 지역에서 77%를 배출하고 있고, 그중에서 절반가량이 선박이다.
이처럼 선박에 의한 대기오염 심각성 때문에 국제사회는 연료유의 황 함유량을 규제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20년부터 국가 간을 운항하는 외항선에 황 함유량 0.5% 이하의 연료 사용을 의무화했다.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몸살을 앓는 중국은 올해부터 주강삼각주, 장강삼각주 등을 대상으로 황 함유량 0.5% 이하 연료유만 사용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항은 2001년에 선박의 속도 저감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하역장비와 노후 트럭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여 미세먼지의 85%를 줄이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기오염 대책은 아직 석탄화력발전소와 경유 차량 규제에 그치고 있다고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17일 지적했다.
항만도시의 미세먼지를 줄이려면 선박에서 배출하는 미세먼지 원인물질에 대한 입체적 관리가 우선 필요하다.
국제해사기구의 황 함유 규제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는 한편 실용적이고 저렴한 배출가스 처리장치의 개발과 장착을 지원해야 한다.
로스앤젤레스처럼 인센티브를 앞세워 선박들의 감속 운항을 유도해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이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해양수산개발원은 밝혔다.
또 전국 주요 무역항을 대상으로 항만구역 내에 상시 대기오염 관측망을 구축해 원인을 분석하는 등 실질적인 오염개선 계획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액화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으로 전환을 촉진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항만구역 내에 신재생 에너지 생산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등 친환경항만으로 전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lyh950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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