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후배 검찰 간부들과 회식을 하고 돈 봉투를 나눠준 사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감찰 지시를 내렸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법무부와 대검찰청이 엄정히 조사해 공직기강을 세우고 청탁금지법 등 법률 위반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면서 "법무부와 검찰의 특수활동비가 원래 용도에 맞게 사용되고 있는지도 조사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직기강 확립을 먼저 내세우고 있지만, 본격적인 검찰 개혁 착수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국장이 나눠준 돈의 출처와 위법성을 따져 보겠다는 부분이 특히 눈길을 끈다. 검찰이 빠져나갈 수 있는 '특수활동비'라는 구멍을 미리 차단한 대목에선 시퍼런 서슬이 느껴진다.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폭주해온 검찰이 이번엔 걸려도 단단히 걸린 것 같다.
며칠 전부터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돈봉투 만찬' 사건은, 얼마나 검찰이 특권의식에 함몰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회식을 한 이유부터 일반인의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수사를 종료하고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 간부들을 격려하는 자리였다니 말이다. 이영렬 중앙지검장이 본부장을 맡았던 검찰 특수본은 적어도 이 사건에 관한 한 수사를 잘했다고 할 수 없다. 다른 건 다 접어두고 우병우 전 청와대 수석을 불구속 기소한 것만 갖고도 그런 엄두를 내기 어렵다. 그 무섭다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조사실에서 우 전 수석이 검사들 앞에 팔짱 끼고 앉아 있던 사진 한 장이면 모든 것을 웅변하고도 남는다. 법원이 우 수석에 대한 영장을 기각한 사유는 한마디로 '수사부실'이었다. 그런데 그 특수본 본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이 수사팀의 무엇을 위로하고 격려금까지 나눠준 것인지 보통 사람의 상식으론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이 낯 뜨거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나서 법무부와 검찰이 보여준 태도는 더 많은 국민의 분노를 샀다. 일단 몸을 낮추고 백배사죄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두 기관 모두 '우리 관행인데 무슨 문제냐'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법무부는 돈봉투에 대해 '주요 수사가 끝나 수사비 지원 차원에서 집행한 것이고 종종 있는 일'이라고 태연히 해명했다. 그러니 인터넷 등에 비난 여론이 비등하지 않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문 대통령의 이번 감찰 지시에는 법무부와 서울중앙지검이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언론에 터지자마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스스로 정리하는 쪽으로 나왔으면 이런 망신은 모면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오랜 세월 몸에 밴 퇴행적 조직논리와 엘리트의식이 오판과 실기를 유발하지 않았나 싶다.
문 대통령은 선거 기간 내내 '정치 검찰'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대통령이 검찰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지 않아도 조국 민정수석의 발탁은 강도 높은 검찰 개혁을 예고하고 있다. 조 수석은 정윤회 문건 파동 등에 대한 전 정권 민정수석실의 일 처리를 우선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이번 '돈봉투 만찬' 사건은 어차피 오게 돼 있는 '개혁 쓰나미'에 검찰 스스로 몸을 던진 결과가 됐다. 다소 애매했던 개혁 착수 타이밍을 조 수석한테 만들어준 의미도 있다. 온 국민의 비난을 받을 만한 추태를 스스로 벌여, 검찰 개혁의 명분과 당위성을 한껏 살려준 셈이니 말이다. 이번 사건에 얽힌 검찰 간부들은 조직 내부에도 고개를 들기가 민망해졌다. 하여튼 결론은 검찰 개혁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어떤 방향이 맞는지는 정답이 나왔다. '돈봉투 만찬' 사건을 저지르고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런 검찰이 사라지도록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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