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北에 협상목적이 정권교체 아니라는 것 분명히하는 게 좋아"
(브뤼셀=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 조윤제 특사를 비롯한 유럽연합(EU)·독일 특사단은 19일 EU 지도부를 면담한 뒤 EU가 북핵 문제 해결에 윤활유나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사단은 이날 EU 지도부 면담 뒤 연합뉴스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면담 결과에 대해 설명하면서 "EU가 북핵 문제에 대해 많은 어드바이스를 해줬다"고도 소개했다.
일례로 이란 핵 협상을 타결지은 경험이 있는 EU는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방법과 관련, 북한에 "협상의 목적이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또 협상이 성공하려면 "상대방의 체면을 살려주는 게 중요하다"면서 "모욕만 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EU·독일 특사단과 가진 일문일답.
--오늘 EU 지도부 만난 성과는
▲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정책 고위대표, 대외관계청(EEAS)의 헬가 슈미트 사무총장 등 세 명을 만났다. 굉장히 좋은 미팅으로 유용했다. EU는 한국이 EU에 특사를 보낸 것을 높이 평가하고 각별하게 맞아줬다. 투스크 상임의장은 본인과 문 대통령이 학생운동을 하고 투옥 생활을 하는 등 삶의 길이 비슷하다고 좋아하며 만나 보고 싶어 하더라. 문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오는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4강뿐만 아니라 EU에까지 특사를 보내는 것은 이례적인데.
▲ 유럽에 특사를 보내기로 한 것은 순전히 문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그만큼 유럽에 대한 기대, 북한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 유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 면에서 상당히 희망적으로 생각한다.
--EU 지도부와 만남에서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눴나.
▲세 분이 공통으로 얘기한 게 북핵 문제다. 북핵 문제에 대해 많은 어드바이스를 해줬다. EU는 '크리티컬 인게이지먼트(Critical engagement·비판적 관여)'를 내세우고 있는데, 새 정부와 철학, 접근방식에서 공통점이 많다. EU는 지난 9년간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조금 답답해했던 것 같다.
대북정책에서 좀 더 오너십을 갖고 적극적·주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새 정부와 문 대통령이 하려고 하는 것과 정확하게 의견 일치를 봤다.
'비판적 관여'는 제재가 목적이 아니라 제재를 통해서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게 목적이다. 새 정부가 하려는 것과 같은 어프로치다.
EU는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자신들의 경험과 지지를 보내줄 용의가 있다고 얘기했다.
투스크 상임의장과 모게리니 고위대표 모두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얘기했다.
--슈미트 EEAS 사무총장은 이란 핵 협상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인물인데.
▲그는 (EU의) 이란 핵 협상 브레인이었고, 핵심 설계자였다. 제재만 해선 안 되고 다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게 제재의 성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상대방의 체면을 살려주는 게 중요하다. 모욕만 주면 안된다. 이란과의 협상에서도 미국은 이란을 모욕주기를 원했지만, 유럽이 (이란의) 체면을 세우도록 해줬다고 했다.
이란 핵 문제 협상에서 얻은 교훈이라면서 (협상의) 목적이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는 게 좋다고 얘기했다.
그는 어떤 도움이라도 주겠다며 모든 자료를 공유할 수 있다고도 했다.
--EU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구체적으로 중재 역할을 하겠다는 플랜을 밝힌 게 있나.
▲아직 거기까지 가지는 않았다. 모게리니 고위대표는 지난 몇 개월간 군사적 행동 얘기도 있고,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것에 대해 우려한다는 입장을 미국에 전달하고 군사적 행동이 없도록 했다고 했다. 중국 측에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하더라.
-- EU가 앞으로 이란 핵 협상 경험을 어떻게 북핵 문제 해결에 접목할 것으로 보나.
▲북핵 문제와 이란 핵 문제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경험 자체가 중요하다. EU는 (이란 핵 문제 때) EU의 제재만으로 안 돼서 유엔의 제재를 추진했고, 다자적으로 접근했다고 한다.
모게리니 고위대표는 북핵 문제에 접근하는 데 있어 유엔이 훨씬 더 해결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협조하겠다고 얘기했다. 또 그는 한꺼번에 다 얻으려고 하지 말고, 이 단계에서 어떻게 인센티브를 주고 어떤 것을 받아낼까 하는 그런 경험이 있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U는 경험을 공유하고 전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이 북핵 문제 해결 및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라고 보나.
▲유럽이 가진 큰 자산은 반세기 이상 북한과 공식적 대화 채널을 유지해온 것이다. 그동안 대북정책, 북핵 문제에 대한 어프로치가 너무 4강 중심으로 전개됐는데, 포괄적 단계적 어프로치를 하겠다는 새 정부는 앞으로 이런 면에서 EU와 서로 협의하고 협력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 김종민 의원) 신정부 대북정책이 이전 정부와 가장 큰 차이는 제재와 대화 병행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는 기조이고, 한국 정부의 능동적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EU라는 조직이 중립적이고 국제사회의 보편적 판단을 보여주는 기구라고 할 수 있는데 EU가 새 정부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새 정부가 국제사회와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 6자회담을 해결하기 위해선 내부의 활력도 필요하지만, 유럽의 역할을 통해서 이를 완화, 해소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배기찬 전 문재인 후보 외교특보) EU가 북핵 문제 해결의 윤활유,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남과 북이 양자 대화를 할 때도 EU가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U가 중재해서 남과 북, EU가 '2+1 형태'로 대화할 수 있다고 본다.
4자나 6자회담을 할 때도 EU가 윤활유·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전쟁 때도 중립국 감시위원회의 역할이 있어서 협정을 마무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진 이유 중 하나는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는 점인데.
▲ (김종민) 북핵 문제라는 게 국제적 이슈라고는 하지만 유럽, 중동의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미북 간 양자 테이블에만 올라 있다. 한국과 중국도 객(客)이다. 북미 간 담판을 지어야 할 문제처럼 보인다. 그래서 중립적인 존재가 필요한 데 중, 러, 일은 어렵다. 현재 가진 테이블만으로는 대화가 답답하게 진행될 것이다.
▲(조 특사) 이번 정부에서 북핵 문제에 진전이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문 대통령에게 강한 의지가 있다. 이번 정부에서 다 풀지는 못해도 북핵 문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시 유럽의 역할에 대한 얘기는 없었나.
▲그런 얘기는 없었다.
▲(김종민) 남북정상회담은 남한이 주도적 능동적으로 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한-EU 정상회담은 언제쯤 하게 되나.
▲문 대통령이 친서에서도 EU와 정상회담을 빨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는 7월에는 G20 정상회의 참석 기회를 활용해서 만나는 것이고, 그와 별도로 조속히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면담 결과에 대해 자평하면.
▲잘 왔다고 생각한다. 북핵 문제를 생각할 때 EU가 주변부의 파트너라고 생각했는데, 이분들도 북핵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도움을 주고 싶어한다. EU는 비교적 제삼자적 관점에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어드바이스와 중재기능을 갖고 (문제를) 풀어낸 경험이 있어서 앞으로 북핵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적극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받았다.
새 정부의 가치, 철학, 대북정책뿐만 아니라 경제정책 등 새 정부의 정책 전반에 관해 설명했더니 굉장히 반가워하더라. EU는 전략적 파트너로서 관계를 강화하기를 바란다고 얘기했다.
bing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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