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차이 CEO "음성과 시각이 자판·터치스크린보다 중요하다."
"구글 I/O, 우리가 원하는 미래 머지않아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 줘"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 "이번엔 특별한 게 없네. 작년에는 '구글홈'과 데이 드림도 발표하고 '모바일 퍼스트에서 AI(인공지능) 퍼스트'라는 획기적인 헤드라인까지 나왔었는데 올해는 다 업데이트 버전뿐이야."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 밸리 한복판인 마운틴뷰 쇼라인앰피시어터에서 열린 구글 개발자회의(I/O)에 대해 '기대 이하'라는 평가들이 많았다.
매년 전 세계 IT 업계를 선도하는 신제품과 소프트웨어를 공개했던 구글 I/O였기에 AI의 적용 폭을 넓히는 데 급급한 듯한 인상을 준 이번 행사를 보고 사람들이 실망하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아무리 구글이지만 어떻게 매년 놀랄만한 제품을 소개할 수 있겠는가"라며 "세상이 너무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거기에 중독된 IT 업계 사람들이 구글에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도 "가끔 사람들은 아무 축하할 일이 없는 데도 파티를 열고 싶어한다. 바로 이번 구글 개발자회의가 딱 그런 케이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구글이 이번 행사를 준비한 의도도 그랬을까.
순다르 피차이 CEO는 첫날 기조연설에서 구글 검색, 유튜브, 구글 맵을 포함한 7개 구글 제품에 각각 10억 명이 넘는 사용자가 있으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탑재한 기기는 20억 개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AI와 머신러닝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AI 퍼스트의 세상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제품을 다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수십억 명이 이용하는 구글의 서비스와 제품을 AI의 세계로 통합하고 싶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피차이와 구글 주요 임원들이 사흘 동안 강조한 것은 AI와 VR(가상현실)이 어디까지 진전됐으며, 이를 구글이 어떻게 묶어내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데 대부분 할애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구글 렌즈'였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꽃이나 거리의 레스토랑을 인식하고, 라우터에 붙은 스티커를 보고 와이파이 네트워크에 연결하는가 하면, 유명 도시의 이름난 빌딩을 비추면 그 건물을 소개해 주고, 일본어 광고판을 영어로 번역해 주는 흥미로운 기능을 피차이 CEO가 무대에서 직접 시연했다.
구글이 과거 실패했던 '구글 글라스'를 AI를 적용해 새로운 형태로 개발할 것임을 시사해 주는 것으로 보였다.
클레이 베이어 VR 부문 부사장이 소개한 '시각적 위치 서비스(VPS)'는 대형 마트에서 자신이 찾고 싶어하는 물건을 단번에 찾을 수 있는 기술이다.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VPS에 활용한다면 시각 장애인의 삶이 획기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
구글의 AI 비서기능 플랫폼인 구글 어시스턴트의 음성인식 기능의 향상도 괄목할 만했지만, 아이폰용 아이튠스 스토어에서 구글 어시스턴트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그동안 '독자 생태계' 구축에 공을 들여온 구글의 전략이 선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모멘텀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에서 그다지 큰 시선을 끌지는 못했지만 기실 엄청난 발표 가운데 하나는 구글이 클라우드 TPU의 차세대 모델을 공개한 것이었다.
4개의 45 테라플롭 칩으로 구성된 이 TPU는 머신 러닝의 속도와 성능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구글 측은 설명했다. 구글은 클라우드 TPU를 초기에는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을 통해 오픈 소스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구글의 발표 후 뉴욕증시에서 세계 최고의 GPU 업체인 엔비디아 주가가 10% 가까이 하락했다. 지난주 열린 엔비디아 개발자회의 당시 20% 이상 주가가 올라 일부 조정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구글이 설계한 이 TPU가 향후 AI 세계의 핵심 칩으로 자리할 것이라는 관측도 일조했다는 것이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이었다. 이제 반도체 업계도 구글 TPU 기술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애플이나 삼성의 새 스마트폰 발표처럼 주목을 끄는 행사는 아니었다. 지난해 구글 I/O와 비교해도 일반인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뉴스는 별로 없었다.
너무 평범해 보였지만 디테일을 보면 그 메시지는 강렬했다.
구글의 향후 모든 기술이 AI를 통한 기기와 서비스의 통합으로 가고 있으며 특히 음성과 시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행사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피차이 CEO는 "음성과 시각은 키보드나 멀티터치 스크린만큼 컴퓨팅에서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포브스는 "올해 개발자회의는 느린 것 같지만 꾸준한 불꽃과도 같았다"며 "피차이 CEO가 '구글 렌즈'를 통해 보여준 것은 AI의 광범위한 적용에 대한 중요한 랜드마크이며,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그리 오래 기다릴 의도가 없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kn020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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