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열겠다"는 이란에 트럼프 "고립시켜야"…'악의 축' 연상(종합)

입력 2017-05-22 13:50   수정 2017-05-22 13:51

"문 열겠다"는 이란에 트럼프 "고립시켜야"…'악의 축' 연상(종합)

로하니 당선소감 이튿날 트럼프, 테러지원국 지목·맹비난

"선과 악의 싸움·이란 고립시켜야"…아들 부시정부 때와 유사




(서울·테헤란=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강훈상 특파원 = 이란이 대선에서 친서방 개방정책을 기조로 하는 중도·개혁파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연임을 선택한 이튿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고립시켜야 한다며 편 가르기에 나섰다.

이에 따라 양국 관계가 미국의 공세와 압박에 이란이 정면으로 대응하며 대치했던 과거로 되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이슬람 아랍-미국 정상회담' 기조연설에서 이란을 테러지원국으로 지목하면서 "모든 양심적인 나라는 이란을 고립시키는 데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對)테러전을 "선과 악의 싸움"이라고 규정한 뒤 이란을 겨냥, "종파 갈등과 테러의 불길을 부채질하고 파괴와 혼돈을 확산하는 무장 조직에 돈과 무기,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선에 당선돼 연임이 확정된 로하니 대통령이 당선 소감을 통해 "이란 국민은 대선을 통해 국제사회와 교류하는 길을 택했다"면서 개방정책에 속도를 붙이겠다고 선언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이란이 평화의 동반자로 나올 때까지 양심적인 모든 나라는 이란을 고립하는 데 협력하면서 이란 국민이 정의로운 정부를 가질 날을 위해 기도하자"고 주문했다.

이 자리에 모인 이슬람권 국가가 대부분 사우디의 영향을 받는 수니파 진영이었다는 점에서 트럼프 정부는 이란을 적대하고 미국의 편에 설 것을 압박한 셈이다.




이란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그의 발언은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던 조지 W. 부시 전 정부 시절을 연상케 한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2년 1월 연두교서에서 이란을 북한,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이라고 처음 지목하고 임기 내내 이란과 대치했다. 이란이 '미사일과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하고, 테러를 수출하는 나라'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그 이듬해부터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이 본격화했다. 200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이 수상하며, 이란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안전보장협정의 조건을 이행하지 못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이란은 역사상 가장 친서방·개혁적이라고 평가되는 모하마드 하타미 정권이었다. 이란의 로하니 대통령도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적성국 미국과 핵협상을 타결한 중도·개혁파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2002년 악의 축 국면과 유사하다.

2005년 대선에서 강경 보수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정권이 탄생한 배경이 미국 정부의 지나친 강공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대선에서 로하니 대통령이 '트럼프 역풍'을 뚫고 압승했지만 트럼프 정부의 이란 적대 정책이 지속되는데 따른 이란의 강경 보수화는 로하니 정부의 개방·개혁 정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미국을 '적'으로 보는 관점은 로하니 정부와 이란 보수파가 다르지 않다.

이런 점에서 로하니 대통령이 교류하겠다고 언급한 '국제사회'는 미국이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비동맹 제3세계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대선 기간 남은 대이란 제재, 즉 테러 지원과 탄도미사일, 인권 탄압과 관련한 제재까지 푼다고 공언했다. 이 약속의 실현 여부는 미국이 '키'를 쥐고 있다.






'전미이란계미국인위원회'(NIAC) 트리타 파르시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에 대해 "이란 국민이 세계를 향한 개방과 대화에 압도적으로 표를 던진 바로 그 시점에 트럼프는 주먹을 꽉 쥐고 이란의 고립을 촉구하는 것으로 응답했다"고 비판했다.

칼 빌트 전 스웨덴 총리 겸 유럽외교협회(ECFR) 공동의장은 21일 트위터에 "이란은 세계에 문을 열겠다는 쪽에 투표했는데 트럼프는 이란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자고 했다. 유럽은 이란과 교류를 더 좋아할 것 같다"는 글을 적었다.

현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양국의 관계가 2002년 악의 축의 경로를 답습한다는 보장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험한' 언사가 분위기를 흉흉하게 할 순 있어도 15년 전과는 다른 조건을 고려해볼 때 더욱 그렇다.

유럽 주요국과 중국, 러시아까지 참여한 핵합의안이 지난 2년간 대체로 순조롭게 이행돼 미국이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할 명분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합의에 부정적이지만 이란 제재 관련 법안(이란핵합의 재검법, 국방수권법)을 유예(웨이버)하는 행정명령에 최근 서명했다.

그는 특히 미국에 천문학적 이득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보잉사 여객기의 이란 판매에 부정적이지 않다.

이란에 큰 타격을 줬던 제재는 오히려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부과했다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수사를 단선적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좋은 사례다.

kje@yna.co.kr,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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