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지난주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시(市)가 2년여 법정 투쟁 끝에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을 상징했던 기념물들을 철거하면서 미국 다른 남부 지역에서도 유사한 철거 조처가 뒤따를지 주목된다.
뉴올리언스 시 당국은 미치 랜드리유 시장의 단호한 주도 아래 지난 19일 남북전쟁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연방정부에 맞서 '반란'을 벌인 남부연합의 주요 기념물들을 모두 철거했다.
마지막으로 철거된 기념물은 시 중심 대로에 있는 남군 전쟁 영웅 로버트 리 장군 동상으로 지난 133년간 뉴올리언스시를 굽어보고 있었다. 이에 앞서 제퍼슨 데이비스 남부연합 대통령과 남군 장군이었던 P.G.T. 보르가드, 그리고 남북전쟁 후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유혈 반란을 찬양하는 기념비 등이 철거됐다.
시 당국은 이들 철거 기념물들을 보관 중이며 박물관이나 공공장소 외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미 남부 지역의 문화를 대표하는 뉴올리언스시는 지난 2015년 시의회의 승인을 얻어 시내에 산재한 남부연합 상징물 철거에 나섰으나 기념물 철거 반대세력이 반대 소송을 제기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그리고 기념물 철거를 둘러싼 찬반 세력의 논란은 노예제도로부터 시작해 더욱 광범위한 문화 논쟁의 대리전으로 확대됐다.
법정 소송이 시간을 끌면서 시 당국은 철거 강행에 나섰으나 반대세력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은 사업자가 계약을 포기하는 등 철거업자를 찾는데도 애를 먹었다.
뉴올리언스 토박이 주민들은 기념물 철거 여부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새로운 이주민들과 젊은층 백인 주민들이 기념물 철거를 적극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미국 남부 각지에서 몰려든 보수 우파 주민들이 전통 유산 보존을 내걸며 철거 반대 운동을 주도했으며 여기에는 새로운 보수 세력인 '대안우익'과 극우단체 등도 포함됐다.
기념물 철거를 둘러싸고 미국 내 보수-진보 세력이 지난해 대선에 이어 다시금 격돌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 대리전은 루이지애나 주도인 배턴루지로 확대돼 이곳에서는 공화당이 지배하는 하원이 지난주 남부연합 기념물 철거금지법안을 가결했다. 흑인 의원들은 백인우월주의의 잔재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표결을 보이콧했다.
현재 미국 내에는 남부연합 상징물에 대한 처리 기준이 없다. 아직도 수많은 학교와 거리, 시설물 등에 남부연합이나 남군을 상징하는 이름들이 붙여져 있다.
지난 2015년 한 백인우월주의자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한 흑인교회에 총기를 난사해 다수를 살상하면서 남부연합 깃발 등 상징물의 공공장소 철거 조처가 지역별로 시행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1일 사설을 통해 "지침이 없다고 (남부연합 기념물들을)방치해서는 안 된다"면서 흑인 주민이 60%에 달하는 뉴올리언스시에 그들을 노예로 부린 제도를 옹호하는 기념물들이 건재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촉구했다.
WP는 조지 워싱턴이나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먼로 등 초기 유명 인사들 역시 노예 소유주였으나 그들의 역사에 대한 기여는 노예제도 수호가 아니었다면서, 특히 남부연합 추종자들이 남북전쟁 이후 세운 기념물들은 지금의 미국인들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백인우월주의 부활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남부연합 상징물 철거 논란의 중심이 됐던 뉴올리언스시를 계기로 다른 지역에서도 '역사정리 작업'이 본격화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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