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고가도로의 화려한 변신 '서울로 7017'

입력 2017-06-10 08:01  

[연합이매진] 고가도로의 화려한 변신 '서울로 7017'

(서울=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도심 속의 공원은 무분별하고 급속한 개발과 숨 가쁜 일상에 쫓긴 도시민들에게 허파나 마찬가지다. 도심 공원은 지역민의 쉼터 역할을 한다. 미세먼지를 흡수해 대기오염을 낮추어 도시 열섬화 현상을 완화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1970년대 산업화 유산인 서울역 고가도로가 마침내 공중보행길 형태의 '서울로 7017'이란 도심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도심을 가로지르던 철도 부지의 화려한 변신 사례를 보여준 광주 푸른길공원, 청량감 넘치는 십리대숲으로 유명한 울산 태화강대공원을 함께 둘러본다.


◇ 힐링이 필요해!…'도시인들의 허파' 도심 공원


"예쁘게 잘 꾸며놓았네요. 나무도 많아 마치 식물도감의 색인을 보는 것 같습니다."

"고가 위에서 바라보는 서울역과 철로, 남대문, 고층빌딩 등 주변 풍광이 새로워요."

"밤에는 낮보다 시원하고 조명까지 더해져 걷는 길이 환상적이에요."





지난 5월 20일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 공중 보행로인 '서울로 7017' 개장 첫날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뤘다. 17곳에 마련된 진입 연결로를 통해 서울로 7017로 올라선 시민과 관광객들은 다양한 크기의 화분에 심긴 각종 꽃과 나무 사이를 걸으며 도심의 새로운 명물을 둘러봤다. 패션쇼와 재즈공연, 인형극 등 다행한 행사가 열려 탐방객들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흉물인가, 예술인가'라는 논란이 일었던 초대형 설치미술 '슈즈트리' 주변은 인증샷을 찍으려는 인파로 장사진이 펼쳐졌다. 헌 신발 3만여 켤레가 높이 17m인 서울로 7017에서 쏟아져 내리듯 서울역 광장까지 100m가량 이어진 슈즈트리는 5월 28일까지 전시된 뒤 철거됐다.






◇ 철거 위기 딛고 공중정원으로 변신하다



서울로 7017은 1970년대 산업화 유산인 서울역 고가도로가 준공된 1970년의 70과 사람 보행길 17개, 그리고 새롭게 탄생한 올해(2017년)를 두루 상징하는 이름이다. 아울러 17m 높이 고가라는 뜻도 담고 있다. '서울로'는 서울을 대표하는 사람길과 서울로 향하는 길이라는 중의적 의미가 있다.

서울역을 끼고 퇴계로, 만리재로, 청파로를 직통으로 잇는 서울역 고가는 1970년 교통난 해결을 위해 건설됐다. 남대문시장과 청파ㆍ만리동 봉제공장을 잇는 산업화의 유산이자 1970~1980년대를 대표하는 명물이었다. 하루 평균 약 5만 대의 차량이 오가던 서울역 고가는 1990년대 후반부터 교량 안전 문제가 드러났다.

정기 진단을 통해 매년 보수공사를 했지만, 노후화로 도로 기능을 상실했고, 2013년 재난위험등급 최하점인 D등급을 받으면서 차량용 도로로서의 은퇴 수순을 밟게 됐다. 이후 철거하거나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었고 결국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Highline Park)처럼 걷기 좋은 공중정원으로 조성하는 방안이 최종 결정됐다. 연간 600만 명이 찾는 하이라인 파크는 폐선을 완전히 없애지 않고 2.3㎞의 도심 철도 고가도로에 꽃과 나무를 심고 벤치와 수변 공간 등을 조성한 공중공원이다.

2015년 12월 13일 0시 차량 통제가 실시됐고, 525일간의 공사 끝에 D등급 다리는 보행 가능한 B등급 다리로 변모했다. 서울로 7017은 퇴계로, 남대문시장, 회현동, 숭례문, 한양도성, 세종대로, 공항터미널, 청파동, 만리동, 손기정공원, 중림동, 서소문공원 등으로 연결된다. 대우재단빌딩과 호텔마누로 이어지는 연결통로를 통해 남산공원과 남대문시장으로 갈 수도 있다. 설계자인 네덜란드 건축ㆍ조경 전문가 비니 마스는 국제현상설계 공모 당선작 설명회에서 "서울역 고가는 광장이자 공원"이라며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고, 동네에서 다른 동네로 가는 과정으로서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 녹색 보행길, 식물도감 색인 보는 듯



서울로 7017의 만리동 방향의 끝, 중구청 청소차고지는 만리동 광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광장의 한쪽에서는 공공미술 작품인 '윤슬: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이 시선을 끈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빛나는 잔물결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작품은 25m 폭에 4m 깊이의 광학렌즈 모양을 하고 있다. 천장에는 스테인리스 스틸 슈퍼미러 재질의 루버(길고 가는 평판을 수평으로 설치한 구조물)를 달아 빛이 내부공간에 투영되는데 마치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다. 움푹하게 들어간 내부공간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루버 사이로 서울로 7017이 들어온다.

반짝 빛나는 윤슬을 지나 중림동 쪽 들머리로 서울로 7017에 올라서니 생명력이 강해서 도시의 조경수로 많이 심는 회양목이 반긴다. 회현동 시작 지점의 가지과 구기자나무부터 중림동 끝 지점의 회양목과 회양목까지 1천24m 구간에 50개과 228종의 식물 2만4천여 그루가 과별로 가나다순으로 심어졌다.

녹색 보행길을 걷다 보면 마치 식물도감의 색인을 보는 것 같다. 갈참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등이 서 있는 참나무과 구간에서는 잎과 줄기, 도토리의 모양,색깔 등에서 종의 차이를 짚어보며 익힐 수 있다. 대개 꽃이 흐드러지게 많이 피며 향기도 좋은 물푸레나무과 구간에서는 우리나라 토종식물인 수수꽃다리, 연보라 꽃잎의 수수꽃다리가 미국으로 반출돼 조경수로 개량된 미스김라일락,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미선나무를 만날 수 있다.

어릴 때 부르던 동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에 나오는 계수나무도 놓칠 수 없는 풍경이다. 다양한 크기의 645개 원형 화분에 심긴 각종 꽃과 나무 앞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는데 스마트폰으로 QR 코드를 찍으면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







◇ 서울역 주변 풍광에 너도나도 감탄사 연발



원형 화분이 지그재그로 놓여 있다 보니 통행이 다소 불편하지만 수많은 나무와 꽃 사이사이에 어린이 인형극 공연이 열리는 담쟁이 극장과 가드닝 체험공간인 정원교실, 거리공연 장소인 장미무대, 트램펄린을 즐길 수 있는 방방놀이터 등이 박혀 있다. 나무를 보며 걷다가 그 구역에 심긴 꽃과 나무의 이름을 따온 장미김밥, 수국식빵을 만날 수 있다. 목련다방에서는 김밥과 떡볶이, 철판토스트, 팔빙수와 단팥죽 등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곳곳에 조명ㆍCCTVㆍ스피커ㆍ태양열 집열판ㆍ와이파이 등이 결합된 기둥 모양의 통합폴을 세워놓았다. 길 양쪽으로는 1.4m 높이의 강화유리로 안전난간을 세웠다. 서울로 7017 아래로 오가는 차량을 볼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 투명한 바닥판을 댄 스카이워크는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인기를 끌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17m 높이를 실감케 할 만큼 아찔하다. D등급 당시의 서울 고가도로의 콘크리트 바닥판도 볼 수 있다. 안개를 뿜어내는 안개 분수대는 더위를 시원하게 식혀준다.

무엇보다 시민들은 차도와 빌딩이 밀집한 도심 한복판 고가 위에서 바라보는 서울역 주변 풍광에 너도나도 감탄사를 연발한다. 사방으로 탁 트인 곳에서 만난 초대형 설치미술 슈즈트리와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사), 세종대로와 숭례문, 경의중앙선 철로와 KTX, 서울역버스환승센터, 서울스퀘어와 남산, 하늘 높이 치솟은 빌딩 등이 연출하는 도심 풍광은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조망이다.







남산에서 시작된 바람이 서울역 광장을 건너 서울로 7017을 지난다. 어느새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하늘이 어두워지면 통합폴에 설치된 총 555개 LED 조명등과 화분 551개를 둘러싼 원형 띠 조명이 서울로 7017을 짙푸른 빛으로 물들인다. 통합폴 상단의 청색 조명은 바닥을 비쳐 은하수를 연출하고, 하단의 백색 조명은 나무를 비춰 반짝이는 별을 표현해 마치 별이 쏟아지는 짙푸른 은하수를 건너는 듯한 느낌이다.

서울로 7017 개장 기념으로 6월 18일까지 20여 개의 축제와 문화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만리동광장에서는 '플라워축제'(5월 20∼27일)를 시작으로 여름철 물놀이 축제인 '한여름 서울로'(8월 25∼27일), 가을에는 서울거리예술축제와 연계한 '워킹데이'(10월 7∼8일), 겨울에는 조명을 통해 설국으로 변신하는 불빛축제 '빛으로 세계로'(12월 1일∼2월 10일) 등 사계절 축제가 열린다. 노천극장 형태의 공공미술작품 '윤슬'에서는 댄스공연,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선보인다.

서울시는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4시에 1시간씩 '해설이 있는 서울로 산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오는 7월부터는 토요일 오후 7시 해설이 추가된다. 참가 신청은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시스템(yeyak.seoul.go.kr)에서 하면 된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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