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브로드밴드의 정규직 전환 실험, 산업계 모두 '주목'
"고용안정과 서비스 품질개선 두마리 토끼 잡을 수 있어야"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수도권에서 SK브로드밴드 인터넷 장애 서비스 처리를 담당하는 A씨의 하루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할 때까지 숨 쉴 틈 없이 흘러간다.
개통 담당 기사의 경우 개통 1건에 1시간을 잡고 하루 평균 8건 정도 개통 업무를 처리하지만 장애 서비스 담당 기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장애가 접수되기 때문에 퇴근이 늦어질 때도 많고 하루에 할당된 업무량이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판단하기 쉽지도 않다.
주말에도 장애 서비스 해결 요청도 많아 토요일도 격주 출근을 하지만 A씨가 한달에 손에 쥐는 월급은 수당을 포함해 2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자신이 소속된 서비스센터의 경영 사정이 나빠지면 임금 체불이 발생하지 않을까 마음 졸이는 일도 잦다.
서비스 전문 자회사를 설립해 인터넷·IPTV 설치, 장애를 담당하는 협력업체 비정규직 직원 5천200여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한 SK브로드밴드의 시도가 어떤 효과를 낼지 주목받고 있다.
SK브로드밴드의 결정이 새 정부 출범 이후 민간 부문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첫 사례인 만큼, 이번 단추를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비슷한 구조로 근로 계약을 맺어 온 다른 산업계 내 정규직 전환 논의의 방향을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이번 일로 SK브로드밴드가 협력업체 직원의 고용 안전성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전반적인 처우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이하 SK브로드밴드 노조) 이해조 지부장은 "건실한 협력업체도 있지만, 협력업체들의 현재 운영 상황으로는 고객 서비스 질 향상과 직원의 고용 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며 SK브로드밴드의 결정에 환영의 입장을 23일 밝혔다.
그동안 SK브로드밴드의 헙력 업체인 홈센터의 경영 사정이 열악해지면 임금체불, 퇴직금 정산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졌다.
홈센터가 SK브로드밴드와 재계약을 맺지 못하면 센터 통폐합 과정에서 기존 센터에서 쌓았던 근속이 사라지는 등 비정규직 직원들은 끊임없이 고용 불안정 위협에 시달려왔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이 지부장은 "자회사 설립으로 단순히 정규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므로 이 부분(처우개선)을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K브로드밴드 노조에 따르면 현재 비정규직 직원인 인터넷 설치, 장애 담당 기사의 기본급은 약 148만원(식대포함) 정도다. 각종 수당을 포함한 평균 급여는 200만원 안팎에 불과하다.
이 지부장은 "남들과 비슷한 수준의 처우를 바라는 게 아니라 70∼80% 수준의 대우라도 해달라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며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고 설명했다.
SK브로드밴드 노조 서동훈 교육선전부장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95% 정도 노조원이라 사정이 좀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조합원 기사들은 출근 시간도 더 빠르고 고임금이 아니다 보니 주말·야간근무 요청이 들어오면 이를 뿌리치기 힘들다"고 전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이 단순히 노동자 처우 개선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품질 향상으로 이어지고 고객들의 이용 만족도가 올라가는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방송통신업계 관계자는 "무늬만 정규직인 '중규직'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앞으로 노조를 중심으로 노동 조건이 개선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기업들은 협력업체 직원의 고용 안정 측면을 넘어서 이용자의 서비스 품질을 높여 경영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SK브로드밴드도 과거 이용자 불만이나 민원을 본사가 직접 챙기기 어려웠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서비스 품질을 본사가 직접 책임진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sujin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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