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시험국민의 탄생'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시험에 얽힌 이야기들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입학부터 취업까지 시험은 한국인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취업한 이후에도 승진을 위해 시험은 계속된다.
시험을 연구해온 교육학자 이경숙은 책 '시험국민의 탄생'(푸른역사 펴냄)에서 시험을 '한국인의 사회적 DNA'로 규정한다. 그는 1천년에 이르는 시험의 역사를 돌아보며 한국인들에게 시험이 갖는 의미를 살핀다. 그리고 이대로 시험이 지배하는 사회가 바람직한지를 묻는다.
우리 역사에 시험이 등장한 것은 958년 고려 광종이 과거시험을 도입하면서부터였다. 가문이라는 배경이 없어도 유능하면 발탁하겠다는 취지였다. 과거시험을 둘러싼 풍경들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벼슬길에 나가려는 젊은이들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며 청춘을 보냈다. 조선 전기에 장원급제자의 평균 나이는 29.2세, 후기에는 36.9세로 과거시험 급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성균관 우등생에게는 1차 시험을 면제해 주는 '성적우수자전형'도 있었다. 부정행위 때문에 파방(罷榜. 과거에 합격한 사람의 발표를 취소하는 일)하기도 했다.
과거제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폐지됐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부활한다. 해방 이후 미국 교육의 영향으로 '과학적 평가운동'이 전개됐고 객관식 시험법이 도입된다. 한국전쟁 중에는 국가 차원에서 중학교 입학시험을 객관식으로 치렀고 1961년 군사쿠데타 직후부터 학사자격시험과 대입시험을 국가 차원에서 사지선다형으로 보기 시작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오지선다형으로 바뀌었을 뿐 객관식 시험의 틀은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영어를 중심으로 한 외국어 시험에 대한 집착도 비슷하다. 한문이 필수였던 시대를 지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세력의 힘에 따라 일본어나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늘었다 줄었다 한 것은 외국어가 과거에도 벼슬에 필요한 능력이었음을 보여준다. 영어는 그중에서도 꾸준히 중요한 과목이었다. 1939년 일본과 영·미관계 냉각으로 조선총독부가 대입에서 영어 시험을 제외하기도 했지만 해방 후 1946년 영어는 외국어 입시의 필수과목으로 부활했다. 이후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시험과목 중 하나라는 위치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시험의 역사를 돌아본 저자는 우리가 왜 이처럼 시험에 집착해왔는지를 분석한다. 시험공부가 곧 학습인 사회에서 시험은 그동안 교육을 대체하는 역할을 해왔다. 시험이 없는 사회를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시험이 없이는 공부하는 법도, 사람을 뽑는 방법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계속 시험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시험은 또 국가기관에 의해 손쉬운 통제장치로 이용됐다. 과거제는 응시자들의 사고를 통일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자 유학 사상을 심어주는 유용한 제도였다. 현대에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탁한 서열화 장치로 기능한다. 점수, 총점, 석차, 등급 등 시험과 관련된 다양한 수치는 사람을 쉽게 서열화해준다. 서열과 결합한 능력주의는 개인의 노력에 따른 성취를 강조할 뿐 공정성을 위한 국가와 사회의 역할은 외면한다.
저자는 인공지능 시대 새로운 사회를 구상할 시점에 시험은 해법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제는 시험 점수로 인간을 서열화하고 등급화해 모든 것을 부여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싸움을 벌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궁극적으로는 사회제도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시험결과가 공정해지고 시험결과가 투명해진다고 살만한 사회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452쪽. 2만5천원.
zitron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