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北도 헷갈릴 것"…'대화조건 설정에 韓입장 중요'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홍국기 기자 = 북한에 보내는 미국의 신호가 혼란스럽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반도 정세가 제재·압박 지속이냐 대화로의 전환이냐의 기로에 선 상황에서 진폭이 큰 미국의 대북 메시지는 일각의 우려를 낳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핵무기를 가진 미치광이"라고 표현했다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23일 보도했다.
미국 언론이 독자적인 취재를 거쳐 보도한 것이지만 언론에 보도될 개연성이 상존하는 정상 간 통화에서 이런 발언을 했고, 또 실제로 보도가 이뤄진 만큼 이 역시 김정은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간주될 수 있다.
이 발언은 신중한 톤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대북 메시지와는 차이가 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1일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만나는 게 적절하다면 '영광스럽게'(honored) 만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지난달 30일 다른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김정은에 대해 "꽤 영리한 녀석"(pretty smart cookie)이라고 평했다. 하대하는 듯한 표현이었지만 김정은의 권력 장악 능력에 대해 언급하는 맥락이었기에 김정은이 '간단치 않은' 인물이라고 평가하는 뉘앙스였다.
북한과의 대화 조건을 둘러싼 미국의 메시지도 변화무쌍하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지난 3월 17일 방한 때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북한과 대화를 할 시점이 아니라 생각한다"며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해야 대화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 16일 북한의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 발사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 앞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가 핵프로그램과 모든 형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볼 때까지는 안 한다"면서 핵프로그램의 전면 중단과 핵·미사일 실험 유예를 대화의 최소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어 틸러슨 장관은 지난 18일 홍석현 대미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핵 실험, 미사일 실험 중지를 행동으로 보여야지 뒤로 북한과 대화를 해나가지는 않겠다"며 헤일리 대사의 발언에 비해 더 단출해진 대화 조건을 제시했다.
일률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듯한 미국 고위 인사들의 발언에는 아직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주한대사 등 한반도 담당자 인선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최대의 압박과 관여'라는 정책의 큰 틀은 나왔지만 단계별 세부 정책은 아직 분명히 서 있지 않은 상황이 고위 당국자들의 메시지에 투영되고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미국은 지금 대북정책에 대해 여러 혼돈된 메시지를 내고 있다"며 "한국 쪽에서도 미국의 대북정책에 헷갈려 하고 있는데, 북한은 제한된 정보를 가진 상황이라 더 헷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고 부원장은 "북한은 지금 미국의 대북정책이 뭔지 아직 결론 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은 아직도 미국의 대북정책을 탐색하는 시기에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대북정책에서 유동성을 보이는 지금 한국 정부의 입장이 중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동대 박원곤 교수는 "중국은 쌍중단(雙中斷·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이야기하면서 '조건없는 대화'까지도 가능하다는 입장이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핵동결 수준에서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며 "전체적인 판을 볼 때 한국 정부의 입장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우리 정부는 무조건적인 대화 재개를 도모하기보다는 미국, 중국과 공조를 해서 대화의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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