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해법]"이대론 기업도 망해"…日아베, '좌파식 노동개혁'

입력 2017-05-28 13:30  

[비정규직해법]"이대론 기업도 망해"…日아베, '좌파식 노동개혁'

'우파' 아베 정권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하라" 가이드라인 발표

저출산·고령화 탈출, 경기 살리기에 '일하는 방식 개혁' 필수 판단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정사원과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의 임금은 같은 수준이어야 한다. 보너스·교통비·식비 등 수당 지급, 경조 휴가도 마찬가지다. 직업 교육도 균등하게 받도록 해야 한다."

언뜻 문구로만 보면, 말그대로 좌파정권의 노동정책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 정치사에서 가장 오른쪽으로 치우친 정권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작년 12월 발표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가이드라인'이다.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어느 유럽 국가도 아닌 일본에서, 그것도 아베 정권에서 이런 지침이 만들어진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지지만 배경을 살펴보면 고개를 끄덕 일만 하다. 이면에는 이런 방식의 개혁이 없으면 앞으로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다.





일본 역시 비정규직 증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은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다.

일단 일본에서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시장의 4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요미우리신문의 작년 12월 설문조사(143개 주요 기업 대상)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7%만 비정규직에 기업 연금을 적용하고 있고 13%만 비정규직에 승진 기회를 줬다. 비정규직에 자기계발을 지원하는 경우는 전체 기업의 46% 뿐이었다.

이 조사결과는 일본 내 비정규직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이런 차별로 해당 기업들은 일단 단기적으로 눈에 보이는 이득을 얻었겠지만, 일본 전체로 보면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아베 정권이 발벗고 나섰다. 아베 정권은 '일하는 방식 개혁'을 중요 축으로 과감한 비정규직 정책을 펴고 있다.

아베 정권이 2019년 본격 도입을 목표로 추진 중인 일하는 방식 개혁은 ▲ 동일노동 동일임금 ▲ 임금 인상 ▲ 시간외 근무 규제 ▲ 여성 취업 지원 ▲ 고령자 취업 활성화 ▲ 일과 가정 양립 ▲ 외국 인재 영입 추진 등을 내용으로 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가이드라인은 기본급·상여금·수당·교육훈련·복리후생 등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대우 격차를 없애는 내용을 담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에 차이가 없다면 동일임금을 지급해야 하며, 근속에 따른 직업능력의 향상이 있으면 승급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동일하게 시켜야 한다.

각종 수당과 상여금도 마찬가지다. 동일한 공헌에 대해서는 동일한 상여금이 지급돼야 하며 직책 수당도 직책의 내용과 책임의 범위가 동일하다면 지급되는 금액이 같아야 한다.

복리후생과 교육훈련에 대해서도 균등·균형대우가 요구된다. 파견노동자의 경우 동일한 임금과 복리후생, 교육훈련 제공 의무가 파견사업주에 부여된다. 차이를 두려면 기업은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다만 이 가이드라인은 기업들이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당장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올해 가을 국회에서부터 관련 내용을 법제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같은 방식의 '개혁'은 기본적으로 근로자의 수를 늘리고 소비를 확대해 경기를 회복시키겠다는 '아베노믹스'의 한 축으로 추진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일하는 사람이 극히 부족한 상황에서 노동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한편, 이들이 받는 수입을 늘리고 돈을 쓸 여유를 줘 소비를 늘림으로써 침체된 경기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아베노믹스의 핵심이다.

여기서 비정규직 처우 개선은 소비를 늘리기 위해 중요한 묘책 중 하나다. 장차 일본의 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 개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정부의 방침에 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한국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경제단체 게이단렌(經團連)은 일하는 방식 개혁의 다른 분야에서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도입에 대해서는 "현행 급여산정 방식이 경쟁력의 원천"이라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의 설문에서 주요 기업들의 66%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도입에 대해 "어렵다"고 답하기도 했다.






기업들의 저항이 심하긴 하지만 결국 이들도 비정규직-정규직의 차별을 없애거나 줄이는 정부의 정책 흐름에 동참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이미 취업 시장의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 기업들은 '직원 모시기' 경쟁을 펼치게 됐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 더 심하면 심했지 더 나아질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인력난이 더 심해지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차별할 여유를 가진 기업들이 줄어들 것이 뻔하다.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일본 기업들의 취업설명회는 "유급휴가가 보장된다", "근무시간이 짧다"는 등의 근로여건을 소개하는 장으로 바뀐 지 오래다.

대형 금융회사 오릭스만 해도 지난달 실시한 취업설명회에서 5일 이상 유급휴가를 얻으면 5만엔(약 50만원)의 장려금을 주고 하루 근무시간도 20분 단축했다고 홍보하는데 열을 올렸다.

인력 확보를 위해 이미 주4일 근무제나 근무간격 인터벌제(퇴근 후 출근까지 일정 간격 의무화)가 도입된 곳도 많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 철폐가 국가 경제에 피해가 될 것이라며 손사래를 치는 한국 기업들에 적지 않은 교훈을 줄 것으로 보인다.

수년째 '출산율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최저'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한국은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비율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인구절벽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bk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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