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심각한 궤도 이탈로 '식물기구'라는 비판까지 받아 온 국가인권위원회가 환골탈태의 전기를 맞은 것 같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이 인권위의 대통령 특별보고를 부활하고, 정부 부처의 인권위 권고 수용률을 높이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이전 정부의 인권 경시 태도와 결별해, 국가의 인권 경시와 침해를 적극 바로잡고, 기본적 인권의 확인과 실현이 관철되는 국정운영을 도모할 것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벌써 검찰, 경찰 등 권력 기관 개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권위의 대통령 특별보고는 국가인권위법에 근거한 권한이자 책무다. 그런데 '부활'이라는 말을 쓸 만큼 보수 정권을 거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조 수석은 "인권위 특별보고가 이명박 정부 시절 형식화됐고, 박근혜 정부 시절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대통령이 특별보고를 받는 것만으로도 인권위의 위상과 권능은 어느 정도 강화될 수 있다. 인권위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적 효력'만 갖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보고를 받는 한 정부 내에서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생긴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인권위에 대한 문 대통령의 관심이 각별한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정부 기관에서 근절해야 할 문제를 직접 예시하기도 했다. 인권위 권고의 핵심은 비켜가면서 부가적 사항만 받아들이거나, 불수용 사유와 수용 여부 자체를 회신하지 않거나, 이행계획을 회신하지 않는 행태 등이 그런 예이다. 문 대통령은 또 인권위 권고 수용지수를 만들어 국가기관과 기관장 평가에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하도록 했다. 조 수석은 이번 조치의 배경과 관련해 "인권위가 요구하는 정신에 기초해 권력 기관 운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인식을 (문 대통령이) 갖고 계신다"고 말했다. 권력기관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가인권위법 제1조는 "개인이 갖고 있는 불가침의 기본권을 보호·향상하고 인간의 존엄·가치를 구현한다"고 설립 목적을 규정하고 있다. 2001년 창설된 인권위는 노무현 정부 때까지만 해도 상당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양심적 병역 거부, 사형제 폐지, 고용허가제 도입, '살 색' 명명 산업규정 개정 등에 대한 인권보호 권고로 관심을 모았다. 안경환 전 위원장 시절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의 의장국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권위 위상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2015년에는 ICC 심사에서 세 차례나 'A등급' 보류 판정을 받았다. 세계 70여 개국이 A등급을 받는데 이 그룹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작년 12월 국회에서 "인권위를 헌법기관으로 만들어 인권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가 그 디딤돌이 될지 주목된다.
ICC가 등급 판정을 보류하면서 주로 문제 삼은 것은, 사실상 정부가 지배하는 인권위 구조였다. 인권위원 11명 중 4명은 대통령이,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고, 나머지 4명은 국회에서 여야가 2명씩 선출한다. 이러니 인권기구의 생명인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현 위원 11명 중 8명이 법조인 출신이라는 것도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2015년 8월 취임한 이성호 현 위원장도 서울중앙지법원장 출신이다. 인권위가 제역할을 하려면 권력 기관과의 불편한 관계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의 인권보다 더 가치 있는 국가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대의명분을 충족시키려면 무엇보다 위원 선임 절차가 지금보다 훨씬 더 투명해져야 한다. 인권위원추천위원회 같은 독립기구를 가동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가능하면 인권의식과 인권 감수성이 높은 인물을 많이 기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권의식을 갖추지 못한 전문성은 도움보다 해악을 더 많이 가져올 수 있다. 신선한 물을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지만 뱀이 삼키면 독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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