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수난사…7명 총리 후보자 중 4명 낙마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 무난하게 통과될 줄 알았던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처리가 진통을 겪으면서 역대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준 과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무총리는 '내각의 2인자'라는 상징성이 있어서 여야는 총리 후보자 인준 과정에서 어김없이 치열한 기 싸움을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총리직이 영광의 자리라기보다는 유력 인사의 '무덤'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김용준·정홍원·안대희·문창극·이완구·황교안·김병준 총리 후보자 등 7명 가운데 3명이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했고, 1명은 청문회도 거치지 못한 채 사퇴하는 수난이 반복됐다.
박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013년 1월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을 첫 번째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으나 아들의 병역면제 논란과 부동산 투기 의혹이 확산하면서 자진사퇴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후인 2014년 5월 안대희 전 대법관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지만, 전관예우 논란이 불거져 낙마했고, 뒤이어 지명을 받은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도 역사인식 논란에 발목이 잡혔다.
이완구 전 총리는 2015년 2월 어렵사리 청문회의 문턱을 넘어 총리로 취임했으나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불법정치자금 리스트 논란 속에서 70일 만에 사퇴했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2016년 11월 '최순실 게이트' 여파 속에서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지만, 여야의 공방 속에서 인사청문회도 해보지 못한 채 낙마했다.
이 같은 상황은 다른 정권에서도 반복됐다. 특히 모든 정부의 첫 번째 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은 극심한 진통 끝에 가까스로 통과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1월 28일 한승수 전 총리를 후보자로 지명하고, 인사청문회도 실시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부동산 투기와 위장전입 의혹 등을 이유로 임명동의안 처리를 거부했고, 결국 한 전 총리에 대한 임명동의안은 정부 출범 이후인 2월 29일에야 통과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1월 22일 고건 전 총리를 총리 후보자로 지명하고 청문회도 실시했지만, 한나라당이 특검법을 처리하지 않을 경우 고 전 총리에 대한 임명동의안도 처리하지 않겠다고 압박했다.
한나라당은 대통령 취임식 이튿날인 2월 26일 사실상 단독 소집한 국회에서 특검법안을 먼저 처리했고, 그 이후 여야 의원들이 모두 참석한 상태에서 고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998년 2월 23일 김종필 전 자민련 명예총재를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지만, 한나라당은 김 후보자의 도덕성, 5·16 쿠데타 가담전력, 경제에 대한 비전문성 등을 들어 당론으로 인준 반대 입장을 정했다.
결국, 총리서리 체제로 내각이 가동됐고, 총리 인준안은 6개월이 지난 8월 17일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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