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중 특사, 교황청에 "美-쿠바 중재처럼 남북화해 지원 요청"

입력 2017-05-26 21:33  

김희중 특사, 교황청에 "美-쿠바 중재처럼 남북화해 지원 요청"

특사단, 프란치스코 교황과 2차례 짧은 면담·파롤린 국무원장과 깊은 대화

교황청 "갈등 푸는 데 대화가 유일한 해결책…어려울수록 대화해야"

(바티칸시티=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교황청이 미국과 쿠바의 관계 정상화를 중재했듯 남북화해를 위해서도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파견한 교황청 특사단이 26일 오전(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과 다시 한 번 면담하는 것으로 특사단 일정을 마쳤다.

교황청 특사인 김희중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대주교)은 6박 7일의 특사단 일정을 마무리한 뒤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교황청의 모든 외교를 조율하고, 책임지는 파롤린 국무원장을 만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중재를 요청한 일을 의미있는 성과로 꼽았다.

그는 "교황청의 외교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크다"며 교황청을 무기도 없고, 군인도 없는 단순한 작은 종교 국가로 생각하지 쉽지만, 여느 나라처럼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중립적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 정착에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김 대주교는 이날은 교황 처소인 교황청 경내 산타마르타에서 열린 아침 미사를 교황과 함께 공동 집전한 뒤 미사 후 교황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에게 받은 친서의 답례로 조만간 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다음은 김 대주교와의 일문일답.

-- 이번 특사단의 성과를 평가하면.

▲ 교황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회담하기 하루 전인 23일에 파롤린 국무원장을 미리 만나 한반도의 긴장이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교황청의 협조를 요청했다. 교황청이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교황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을 때 한반도와 관련해 '대화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평화의 메시지도 함께 전달했을 것이란 이야기를 교황청 소식통에게서 들었다.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교황과 트럼프의 회동 직전 교황청과 사전에 조율해 한반도의 위기 상황을 평화롭게 풀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한 것은 상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 오늘은 교황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 새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한국인들이 희망을 느끼고 있고, 남북 관계에서도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고, 한국의 새 정부와 대통령이 잘해나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기도를 요청했다. 교황은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문 대통령이 보낸 친서에 대한 답례로)곧 문 대통령 앞으로 친서를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교황은 지난 24일 수요 일반 알현 직후 특사단으로부터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받았을 때는 문 대통령에 선물로 전해달라며 손수 묵주를 건네주기도 했다)






--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에 대한 교황의 직접적인 발언은 없었나.

▲ 교황은 보통 개별적인 만남에서는 말씀을 아끼신다. 중요하고 실질적인 이야기는 교황에게 모든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파롤린 국무원장과 나눴다. 파롤린 추기경에게 교황님이 미국과 쿠바를 중재했던 모델을 우리도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한반도에 평화가 올 수 있도록,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필요하면 교황청이 협력해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교황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개인적으로 서한을 보내 대화를 주문하고, 교황청으로 양국 대표단을 불러 담판을 짓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미국과 쿠바가 국교를 정상화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파롤린 추기경은 이에 대해 모든 갈등에 있어 대화가 유일한 해결책이고, 힘들 때일수록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 정부의 의사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잘 전하겠다고 말했다.

-- 가톨릭 전통이 강한 쿠바와 북한과는 상황이 다르다. 교황청은 북한과 정식 국교 관계가 수립돼 있지 않고, 북한에는 가톨릭 성직자도 전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황청이 남북화해를 어떤 방식으로 중재할 수 있을까.

▲ 교황청의 외교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이다. 우리로 치면 세계 곳곳의 읍·면 단위까지 사제들이 진출해 있기 때문에 정보력도 미국이나 이스라엘보다도 좋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위 당시에도 교황청이 북한에 특사를 보낸 적이 있고, 개인적으로는 2년 전 북한 관리로부터 교황의 평양 방문을 주선해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또한, 북한과 가까운 동유럽, 베트남, 중국 등을 통해서 북한에 다가가는 방법도 있다. 평양에도 동방정교회 교회가 몇 년 전 하나 생겼고, 북한인 신부도 1명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니, 가톨릭과 북한을 잇는 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 정권 입장에서도 국제적인 고립에서 탈피하려면 교황청과의 관계 증진이 필요할 것이다.

-- 새 정부가 4대 강국 외에 교황청으로도 특사를 파견한 것은 이례적인데.

▲ 새 교황청의 국제적인 위상과 외교력을 어느 정도 알았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교황청을 단순히 무기도 없고, 군인도 없는 조그만 종교적 나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국제사회에서 각 나라의 외교단장은 보통 교황청 대사가 맡을 정도로 교황청이야말로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외교 관계를 조율하는 마지막 채널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 교황청의 한국과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인식은.

▲ 작년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 파롤린 추기경을 만났을 때는 걱정을 많이 들었다. 특히,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남북 대화가 끊긴 것에 대한 우려가 컸다. 파롤린 추기경은 이번 만남에서도 어려울수록 대화가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음 달에 북한 측의 초청을 받아 천주교를 비롯한 7대 종단 대표가 평양을 방문한다. 나도 그 일원으로 북한에 가게 됐다고 했더니 '잘 만나고 오라'고 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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