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성간 기자 = 아프리카 풍토병인 수면병(트리파노소마병) 치료제인 수라민(suramin)이 자폐증의 주요 증상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는 임상시험 결과가 나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 의대 미토콘드리아-대사질환센터(Mitochondrial and Metabolic Disease Center)의 로버트 내비오(Robert Naviaux) 박사는 수라민이 자폐아의 사회성 장애, 반복행동, 언어기능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헬스데이 뉴스가 26일 보도했다.
자폐스펙트럼장애(자폐증)로 진단된 5~14세 남아 10명을 5명씩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만 수라민을 1회 정맥에 주사한 결과 이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고 내비오 박사는 밝혔다.
수라민이 투여된 5명은 모두 괄목할만한 효과가 나타났고 심각한 부작용은 없었다.
수라민 주사를 맞은 아이들은 사회성, 소통, 놀이 기능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집중력과 침착성도 좋아졌다.
또 반복행동이 줄어들고 상황에 대처하는 기술(coping skill)도 개선됐다.
한 아이의 부모는 주사를 맞은 지 몇 시간도 안 돼 아이가 사람들과 눈을 자주 맞추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행동을 보였으며 침착성을 유지하는 능력도 좋아졌다고 밝혔다.
온종일 한마디도 안 하던 두 아이는 주사를 맞은 지 1주일이 되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수라민이 투여되지 않은 다른 아이들 5명은 물론 이러한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는 일시적이었고 몇 주가 지나자 사라졌다.
자폐증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내비오 박사는 자폐증의 최소한 일부는 스트레스와 손상에 대한 신체의 정상적인 반응이 빗나갈 때 발생한다는 이른바 '세포의 위험 가설'(cell danger hypothesis)을 실험해 보고 싶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세포가 스트레스나 손상을 받으면 이를 치유하기 위해 다른 세포들과의 신호전달을 일시적으로 끊는데 이것이 영구화되면 세포가 계속 공격을 받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게 돼 결국 자폐증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포가 바이러스 감염, 독성물질, 유전적 돌연변이와 같은 위험에 노출되면 방어수단으로 정상적인 활동을 중단하고 위협이라 여겨지는 것에 대해 장애물을 구축하게 되는데 그 결과로 세포들 사이의 소통이 차단돼 결국 자폐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내비오 박사의 설명이다.
수라민은 바로 세포의 이러한 비정상적인 치유과정을 촉발하는 ATP라는 단백질을 차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연구결과에 대해 뉴욕 레녹스힐 병원 아동-청소년 정신의학 전문의 매슈 로버 박사는 불과 5명의 자폐아에게 투여해 나타난 효과이기 때문에 더 많은 자폐아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해 볼 필요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연구결과는 '임상-중개 신경학 회보'(Annals of Clinical and Translational Neurology) 최신호(5월 26일 자)에 실렸다.
s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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