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감독 분리' 금융감독개편 이번 정부서도 물 건너가나

입력 2017-05-28 06:21   수정 2017-05-28 08:19

'정책·감독 분리' 금융감독개편 이번 정부서도 물 건너가나

1차 정부조직개편서 금융위 제외…"정권초 아니면 개편 어려울 것" 관측

현체제 '가계부채·기업부실' 초래 비판…"독립委 만들어 논의해야" 제언도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 문재인 정부가 초기 정부조직개편을 최소화하고 국정안정에 방점을 두기로 하면서 금융권의 화두였던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물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한국의 금융산업이 발전하고 경제 '혈맥'으로 제 기능을 하려면 투명하고 건전한 논의를 바탕으로 금융감독체계 개편 시도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난 24일 발표한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보면 금융감독체계 개편과 관련된 정부부처인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개편 대상에서 제외됐다.

새 정부 출범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개혁과제지만 정식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이번 정부에서는 일자리 정책과 재벌개혁 등 다른 경제 분야 의제에 밀려 별다른 논의 없이 현상 유지가 결정된 모습이다.

국정자문위 소속 한 의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기재부, 금융위 등 경제부처 개편은 전혀 논의한 바 없었다"며 "인수위 없이 출범하는 것이다 보니 국정안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고 말했다.

관가에서는 이런 결과를 일찌감치 예상했다는 분위기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과 여당이 정부조직개편 최소화 방침을 여러 차례 재확인한 바 있다"며 "금융위 조직개편은 우선순위에서 제외돼 있었기 때문에 이번 개편안에는 애초 포함될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예상됐다"고 말했다.

정부조직개편이 최소화되면서 공약 사항이었던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도 당분간은 없던 일로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집에서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분리하겠다고 한 바 있다.

대통령의 공약 싱크탱크였던 '민주당 더미래연구소'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금융위의 정책기능을 기획재정부 쪽으로, 감독 기능은 금융감독원으로 넘겨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제시됐다. 결과적으로 금융위 해체에 무게가 실렸다.

금융감독기구 개편 논의는 새 정부 출범 때마다 정부조직 개편안의 주요 이슈로 부각돼왔다.

외환위기 직후이자 국민의 정부 출범 초기인 1998년 4월 금융감독위원회가 설립되면서 국제통화기금(IMF) 권고에 따라 금융산업정책(재정경제부)과 금융감독(금감위) 기능이 분리됐다.

그러다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양자 기능을 통합해 현 금융위가 출범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다시 있었지만, 갑론을박만 있었을 뿐 시간만 끌다가 없던 일이 됐다.

현행 체제에서는 금융감독이 금융산업정책에 종속돼 감독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가계부채 대응 실패와 대우조선해양[042660] 사태 등 기업부실에 미리 대응하지 못한 것도 이에 기인했다는 평가가 많다.

윤석헌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는 "현재 가계부채가 꼭지에 도달하고 기업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금융감독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 시점에 현재와 같은 관료 중심 마인드로는 금융산업 발전을 끌고 갈 수 없다"고 비판했다.

내년 개헌 논의가 본격화되면 이와 맞물려 정부조직개편 이슈가 재부상하면서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다시 급물살을 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흐지부지된 전례에서 보듯 정권 초기 힘을 실어 추진하지 않으면 기재부나 금융위처럼 소위 '힘센' 부처의 개편은 물 건너 간 것과 마찬가지란 관측이 많다.

한 금융위 관계자는 "정권 초에 바꾸지 않는 이상 큰 폭의 정부조직개편은 어렵다는 게 그동안의 경험칙"이라며 "내부적으로는 조직개편을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반면 정권 출범기가 지나더라도 독립적인 위원회 구성으로 투명하게 의견을 수렴해 개혁과제를 만들고 실행해 가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호주는 2013년 12월 호주 금융산업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할 민간위원회인 '금융제도조사위원회'(일명 머레이 위원회)를 출범해 성과를 거뒀는데, 이런 개혁 시도를 벤치 마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홍범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정권 초기가 아니면 평소에 개혁할 수 있는 역량이 떨어지는데, 새 정부는 급하게 출범한 것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정권 출범 직전 인수위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던 관행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p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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