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정복 아닌 탐험의 대상…바둑 더 재밌게 발전"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세계 최강자로 인정받는 중국랭킹 1위 커제 9단도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에 무릎을 꿇었다.
바둑계는 최첨단 인공지능을 최전선에서 마주하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가 지난해 3월 서울에서 '인간 바둑 대표자' 이세돌 9단을 4승 1패로 꺾었을 때는 인류 전체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그러나 알파고 쇼크를 맞이한 지 1년 2개월이 지난 지금의 바둑계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즐기고 있다.
알파고는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딥마인드는 1년 전보다 알파고의 실력이 3점 늘었다고 자평했다. 3점 강해졌다는 것에 대해 김지석 9단은 '100m 달리기에서 상대에게 3초를 제해줘도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느낌'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만큼 알파고의 바둑 실력은 인간계를 뛰어넘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알파고는 지난 23일부터 27일까지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 서밋'에서 커제 9단을 3차례 격파하며 이를 입증했다.
26일 열린 상담기 행사에서는 중국 최정상의 프로 바둑기사 5명이 팀을 짜서 대적해도 알파고가 이겼다.
하지만 바둑계는 이제 충격받지 않는다.
커제 9단은 대국 시작 전부터 알파고를 '신선'에 비유했고, 1국 패배 후에는 '바둑의 신'에 빗대기도 했다. 알파고의 압승은 어찌 보면 예상했던 결과다.
그렇다고 인간이 알파고를 자포자기 심정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정복하지는 못하더라도 탐험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지난해 알파고의 '역습' 이후 바둑계는 서서히 알파고를 가까이 받아들였다.
알파고가 2016년 12월 말과 올해 1월 초 사이 인터넷에서 정상의 프로기사들에 60연승을 거둘 때 프로기사들은 놀라워하면서도 도전 의식에 들끓었다.
이때부터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 겨뤘을 때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딥마인드가 '알파고 마스터'라고 부르는 이 알파고가 이번에 커제 9단과 대국한 알파고 버전이다.
알파고는 프로기사들 사이에서 겨뤄보고 싶은 인기 상대가 됐다.
기사들은 알파고의 파격적인 수를 연구하고 실전에 차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알파고의 약점을 찾아내려는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바둑도 진화했다.
오정아 3단은 "알파고 등장 이후 '이상한 수', '말도 안 되는 수'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바둑이 시야가 넓어졌다. 바둑을 둘 때 전체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유진 5단도 "대부분의 기사가 알파고 수법을 써봤을 것이다. 실전에서도 많이 시도하고 있다. 기존과 다른 바둑이 많이 나온다"며 "바둑이 더 재밌어졌다"고 말했다.
중국의 롄샤오 8단은 지난 26일 알파고와 페어바둑을 펼친 뒤 "알파고와 팀을 이뤄 대국하면서 바둑의 지평을 넓어졌다. 바둑에 더 많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기뻐했다.
롄샤오 8단은 "알파고가 막강하다고 느끼지만, '천하무적'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기대했다.
김지석 9단도 "인간이 알파고를 이길 가능성이 0에 가깝다고는 해도, 알파고와 대국하면 그 어떤 대국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알파고 등장 이후 바둑을 더 자유롭게 생각하게 됐다"며 전체적으로 인공지능 덕분에 인간의 바둑이 더 발전하는 기회가 됐다"고 반겼다.
이처럼 바둑계는 인공지능을 공존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더 잘 활용하려고 한다.
구글 딥마인드는 알파고 기술을 활용해 인공지능을 의료·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할 구상을 하고 있다.
알파고를 경험한 바둑계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상담기에 참여했던 스웨 9단은 "인공지능은 인간의 삶을 더 좋게 하는 데 다양하게 활용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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