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케이 유엔 세계식량계획 공여국장, 아프리카 기근 참혹함 강조
"기근은 인간이 만든 재앙…유엔 창설후 최대위기로 당장 지원 나서야"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한나절마다 아이 72명이 탄 버스가 낭떠러지로 돌진합니다. 당신이 그 버스를 세울 수만 있다면 당연히 세우지 않을까요?"
크리스 케이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공여국장은 28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나이지리아·소말리아·남수단·예멘 등 아프리카 4개국이 겪는 대기근의 심각성과 국제사회가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할 필요성을 이처럼 표현했다.
대기근은 '인구의 20% 이상이 극심한 식량부족'을 겪고 '5세 이하 아동 가운데 30% 이상이 만성 영양실조'에 빠졌으며 '사망률이 평소보다 2배 이상' 높아지면 선포된다.
WFP 직원들은 말이 씨가 될까 봐 대기근(Famine)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불가피할 경우 'F로 시작하는 단어'라고 돌려서 말할 정도로 심각한 재앙이다.
이달 23일 현재 나이지리아 등 4개국에는 약 2천만명이 기아 직전에 놓인 것으로 추산된다. 서울 인구(992만2천여명)의 갑절 이상이다.
4개국에서 영양실조 '위험' 상태의 아동은 570만명, '심각' 상태 아동은 150만명으로 집계됐다.
이러다 보니 올해 3월 스티븐 오브라이언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국장은 "1945년 유엔 창설 이후 최대의 인도주의적 위기"라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하기도 했다.
WFP가 나이지리아 등 4개국 기근에 대응하는 사업을 벌이는 데 20억달러(약 2조2천416억원)가 있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UNICEF) 등 다른 유엔기구 사업까지 합치면 총 36억달러가 필요하다.
케이 국장의 역할은 각국 정부로부터 WFP가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WFP는 다른 유엔기구와 달리 회원국 분담금이 없고 각 나라가 자발적으로 내는 공여금만으로 사업을 펼치기 때문에 케이 국장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그는 4개국 기근을 "인간이 만든(man-made) 재앙"이라고 규정했다.
케이 국장은 "나이지리아 등 4개국이 심각한 기근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계속되는 분쟁"이라며 "남수단은 정세불안에 가뭄까지 겹쳐 (WFP가) 상황을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이르렀고 예멘은 내전, 나이지리아 북부는 보코하람(무장단체) 탓에 (나라가) 불안정하다"고 전했다.
이어 "이런 상황이 사람들을 피난하게 하고 시장의 작동도 중단시키며 식량도 없애기 때문에 기근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러면서 "지금이 아니면 늦다"며 곧장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는 당장 돈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WFP가 바로 지원에 나서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한 사람이 수백만 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케이 국장이 한국에 거는 기대는 크다.
그는 "WFP가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기아를 없애겠다는 '제로 헝거(zero hunger)'라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근거 가운데 하나가 한국"이라며 "한국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WFP의 지원을 받는 나라였지만 이제는 중요한 공여국이 됐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기대도 숨기지 않았다.
케이 국장은 문 대통령이 공적개발원조(ODA) 확충 의지를 보이고 외교부 장관으로 유엔의 역할과 사정을 잘 아는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 출신을 지명한 것과 관련해 "기쁘고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가 고위직에 있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웃고는 "많은 나라가 ODA를 줄이거나 유지하려는 추세인데 한국은 늘리려는 의지를 보여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케이 국장은 "지난해 59억달러의 공여금이 모여 WFP에게 성공적인 해였다"면서 "다만 인도주의 위기가 늘면서 필요한 예산과 (WFP가) 실제 가진 돈의 차이가 커진다는 점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또 최근 각국의 자국 중심주의 경향에 대해 케이 국장은 "반년 전만 해도 유엔 내부에서 우려가 컸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흐름이 바뀌어 많은 나라에서 (자국 중심주의가)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이 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주의적 지원이 수혜국의 발전을 가져오지 못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된다는 회의론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했다.
케이 국장은 "에티오피아는 1980년대 대기근으로 수십만 명이 사망했지만 이후 국제적인 지원을 받고 정치 상황이 안정되면서 이번에는 기근 상황을 잘 관리하고 있다"면서 언론이 '성공사례'는 잘 다루지 않아 일반 대중이 잘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몇 차례의 터치로 기아 아동에게 500원가량을 기부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셰어더밀(ShareTheMeal)'을 소개하고 "작은 액수도 실제로 도움이 되며 인류는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도 생긴다"며 많은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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