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기 3대로 800m 끌어와 겨우 물 대…지하수 차지 싸움에 민심 '흉흉'
(청주=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 농민도, 농작물도 혹심한 가뭄에 속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다.
몇달째 비다운 비를 구경조차 못했다. 벌써 30도를 오르내리는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먼지만 풀풀거리는 들녘을 바라보는 농심은 가슴 속에 시커먼 숯을 키운다.
청주시 미원면 구방2리에서 밭농사를 짓는 최재학(52)씨는 두 달 넘게 가뭄과 혈투를 벌이고 있다.
불볕 더위에 땀 범벅이 된 몸을 이끌고 바싹 말라 갈라지는 밭에 양수기로 물을 대느라 분주한 그는 "이대로 가다가는 일주일이면 모두 절단날 것"이라고 탄식했다.
바닥이 갈라진 밭에 뿌리를 내린 양배추와 브로콜리 잎이 말라 누렇게 변했다. 줄기가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이 한 눈에 봐도 생육이 좋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이대로 놔뒀다가는 곧 말라 죽을 것이 자명했다.
양수기에서 끌어올린 물이 닿지 않은 밭 가장자리 양배추는 지난주 이미 말라죽었다.
이달 수확을 시작한 브로콜리는 가뭄에 직격탄을 맞았다.
최씨는 구방리 일대 양채 작목반 19개 농가의 브로콜리 출하량이 지난해 절반 수준이라고 전했다.
내달 출하를 앞둔 양배추도 올봄 수분을 충분히 받지 못해 시든 상태다.
전날까지 충북에서는 청주와 충주의 브로콜리·참깨·옥수수 재배 농가에서 7.9㏊의 시듦 피해가 접수됐다.
최씨는 지난주 양배추가 모두 말라죽을 위기에 처하자 포크레인을 동원해 밭에서 약 800m 떨어진 하천 바닥을 팠다.
수량이 줄어 졸졸 흐르는 물이라도 모아 밭에 대기 위해서였다.
고인 물을 밭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양수기 3대와 200∼300m 호스 3개가 필요했다.
산간 마을 골짜기로 난 상류 지천의 물줄기는 지난달 이미 끊겼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강수량에 곳곳에 설치한 인공 우물은 제역할을 못하고 있었다.
A(53)씨는 "관정에서 졸졸 올라오는 물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이웃 간 다툼까지 벌어졌다"면서 "가뭄이 농촌 인심까지 각박하게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오랜 가뭄에 시달린 탓에 농민들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이 마을 농민들은 주로 감자, 마늘, 양배추, 브로콜리, 벼농사를 짓는다. 물을 대지 못해 모내기를 아직 못한 논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이달 단 한 번도 '급수'를 받지 못한 감자밭에는 관정을 파기 위한 기계설비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청주기상지청에 따르면 올봄(3월 1일∼지난 28일) 충북 지역 강수량은 107.6㎜로 지난해 같은 기간(237.3㎜)의 45.3% 수준이다.
충청북도는 산간 마을 등 가뭄 취약지역에 양수기 352대, 용수 호스 42㎞, 스프링클러 792대를 지원하고 가뭄 대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도 관계자는 "계속 비가 오지 않으면 농작물 피해가 우려된다"면서 "소방차와 물탱크차를 이용해 산간 마을 등 취약지역에 비상 급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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