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이민 역사상 최고위직…중앙과 지방 간 정책조율 맡아
"발전된 나라로 만들면서 한국과의 외교관계사 새로 쓰고 싶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한인들이 이 나라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실제 3만여 명의 한인은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발전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한인은 물론 아시아계로도 최고위직에 오른 변겨레(안토니오 겨레 변·30) 연방정부 문화부 차관보는 "한인들이 이 나라 역사 발전에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저의 책임이고 비전"이라고 강조했다.
이달 29일부터 6월 2일까지 재외동포재단 주최로 열리는 '제5차 세계한인정치인포럼'에 참가한 그는 3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임기 4년 중 1년 반이 지났다. 소감을 말해달라'는 주문에 "10년 감수한 것 같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차관보로 일하는 것은 매일매일 새로운 도전이고, 언제나 창의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과정이어서 재미있다. 그리고 아주 다이내믹하다"며 "공무원이 딱 맞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자신이 보좌했던 이반 페트렐라 시의원이 문화부 차관에 오르면서 지난해 1월 차관보로 발탁된 그는 부처 내 서열 5위다. 장관 밑에 차관 3명이 있고, 4명의 차관보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3명의 국장을 거느리고 중앙정부와 주정부 간 문화정책을 조율하면서 국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연방 산하의 24개 주 2천234개 도시의 문화정책을 총 관리하고 실행하는 업무다.
"인구 4천만 명의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에서 8번째로 큰 나라입니다. 2천234개 도시 중 인구 5만 명이 넘는 도시는 127개뿐이고 나머지는 5만 명 이하, 78%는 1만 명 이하죠. 이런 도시의 시장들을 상대로 일합니다. 작년 한 해 만난 시장만 400명이 넘어요.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만나 미팅한 횟수를 따지면 하루에 3∼4명꼴은 됩니다. 시장들은 주로 중앙정부에서 어떡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문의합니다. 일주일에 4회 이상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가다 보니 주로 호텔에서 생활하죠."
그는 작은 도시를 후원할 수 있는 문화정책을 실현하려고 뛰고 있다. 땅덩어리가 워낙 크다 보니 여러 도시의 시장과 문화국장들이 서로 몰라 이들을 네트워킹하는데 힘을 쏟는다. 주 정부의 문화부 장관과 차관들을 엮어주는 시도도 하고 있다. 교류를 잘하고, 연방정부 문화정책을 잘 실현하는 주와 시에는 인센티브를 준단다.
아르헨티나 연방정부는 한국의 정책을 롤 모델로 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정부 투명화, 전자정부 실현, 비리 사건 척결, 빈부 격차 해소 등을 위해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도 한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하고 많은 것을 배우도록 관련 장·차관들에게 강조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변 차관보는 이런 분위기를 살려 지난해 한국 문화부와 자매결연을 주도했고, 양국 간 차세대 예술가 양성을 위한 장학금 제도를 만들어 업무협력약정(MOU)을 체결하는 데도 앞장섰다.
그는 최근 집권 여당인 '공화주의제안당'(PRO)으로부터 시의원 출마를 제의받았지만 거절했다.
"그거야 당연하죠. 이제 정책 실현을 위해 막 단추를 끼웠는데, 결실도 보지 않고 어떻게 다른 일을 하겠어요. 저는 4년의 임기를 잘 마치고 싶습니다. 저를 바라보는 아르헨티나인들의 눈이 있잖아요. 저를 한국인과 아시안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야 더 큰 기회가 오는 것 아니겠어요."
시의원이나 국회의원 출마 여부를 재차 묻자 그는 "임기를 마치고 나서 생각해 보겠다. 그러나 공부를 더 하는 쪽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5년 영국의 런던정경대에 합격했고, 유학 준비를 하다가 차관보 제의가 와서 공부를 잠시 미뤘다.
"시의원이든 국회의원이든 정치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차관이나 장관에 오를 수도 있겠죠.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차관보 임기가 끝나면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맞는다고 봅니다. 준비되어있느냐, 되어있지 않느냐는 차이는 아주 크기 때문입니다."
출장비와 활동비 등을 제외하고 월 9천 달러를 받는 성공한 공무원이 된 그는 '두 배로 겸손하게, 두 배로 성실하게'를 신념처럼 여기며 산다고 강조했다. 연방정부에서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아시안 전체가 욕을 먹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변 차관보는 "아르헨티나의 발전된 역사를 만들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다"면서 "한국과 아르헨티나 간 외교관계 역사도 새로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1980년 단돈 10달러를 들고 아르헨티나에 이민한 변광수(57)·이영미(54) 씨는 '언제나 모국을 생각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큰 꿈과 비전을 가져라'라는 뜻으로 현지에서 태어난 세 아들의 이름을 순우리말인 겨레, 얼(26), 결(21)로 지었다. 부모의 뜻대로 장남은 이민 역사상 처음으로 정부 고위직 인사가 됐고, 막내 결은 대통령 연설문을 작성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대 법대에 입학한 변 차관보는 2012년 독일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유학했으며, 같은 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모의재판대회에 아르헨티나 대표로 참가했다. 2009년부터 졸업할 때까지 대학에서 정당(PRO) 활동을 했고, 2012년에는 PRO 청년부 문화부장으로 뽑혀 일했다. 당시 그는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이벤트를 많이 만들어 한인사회 주요 인사와 현지 문화계 인사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졸업과 함께 국제법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기도 한 그는 뉴스 포털 사이트에서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는 동시에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아르헨티나 지회에서 차세대로 활동했고, 한인상인연합회 이사, 한인전문인협회 총무, 한인문인협회 회원 등을 지냈다. 2013년 아르헨티나 총선이 끝나고 이반 페트렐라 시의원의 보좌관이 되면서 관료의 길이 열렸다.
지난해 차관보가 되자마자 외교부 초청으로 방한했던 그는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이유를 '어머니로부터 손바닥을 맞아가며 배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가 하면 공문서에 결재할 때 '변겨레'라는 한글로 사인한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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