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부러지고 멀쩡한 열매 하나도 없어"…우박에 과수 초토화

입력 2017-06-01 10:51   수정 2017-06-01 15:42

"가지 부러지고 멀쩡한 열매 하나도 없어"…우박에 과수 초토화

(곡성=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노무현 대통령 때 청와대에 납품했던 품질 좋은 사과에요. 그런데 나무째 베어내야 할 형편입니다."

전남 곡성군 겸면 운교리에서 25년째 사과농사를 짓는 박한보(52)씨는 1일 '우박 폭격'을 맞은 과수원을 돌아보며 고개를 떨궜다.


박씨 과수원뿐만 아니라 마을 25개 농가 30㏊ 농경지가 전날 오후 6시 30분부터 30분 넘게 쏟아진 우박에 초토화됐다.

천둥, 번개, 소나기와 함께 쏟아진 골프공 크기 우박은 지붕을 때리고 차창을 부수고 차광막과 비닐하우스까지 뚫고 들어갔다.

박씨와 주민들은 시커먼 하늘에서 쏟아지는 우박에 밖으로 나갈 엄두도 못 내고 집안에서 발만 동동 굴렸다.

뜬눈으로 밤을 보낸 주민들은 아침 일찍 과수원으로, 밭으로 달려나갔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는 허사였다.

우박은 마을 주산물인 사과뿐만 아니라 수박·고추·깨를 가릴 것 없이 모든 작물을 망가뜨렸다.


한 그루당 200여개씩 맺혔던 사과는 멀쩡한 열매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우박은 날이 새도록 녹지 않은 채 과수원 곳곳에 쌓여있었다. 얼음조각에 막힌 하수구 주변마다 빗물이 범람했다.

8월이면 풋풋한 아오리, 추석 무렵이면 새빨간 홍옥, 겨울에는 과육에 꿀이 맺히는 부사까지 농가마다 멀쩡한 사과가 남아나질 않았다.

우박은 올해 농사만 망치지 않았다.

나무마다 가지를 부러뜨리고 껍질을 벗겨내는 등 회복 불능의 상처를 남겼다.

농민들은 다친 나무를 전부 잘라내고 새순을 길러 과수원을 재건해야 한다고 한숨 쉬었다.

박씨는 "태풍이 와서 열매 좀 떨어지는 수준과 규모가 다르다"며 "평생 농사를 지었지만 이런 피해는 처음이다"고 울분을 삼켰다.


곡성군은 겸면과 오산·옥과·삼기면 등 우박 피해를 본 마을에서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전남도도 곡성과 담양·장성·화순 등에서 전날 쏟아진 우박으로 인한 피해 규모를 확인하고 있다.

h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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