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 7개월만…글로벌 거버넌스 역행, 美리더십에 악재
美언론 "최종탈퇴까지 4년", 차기정부서 번복 가능성도 거론
중국 등 나머지 당사국, 협정이행 강조…협정 이완 우려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 지난해 11월 공식 발효된 기후변화에 관한 파리협정이 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탈퇴 선언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온실가스 배출 2위 국가인 미국이 탈퇴를 선언하면서 파리협정의 미래에 '적색등'이 켜진 것이다.
미국의 탈퇴 선언에도 온실가스 배출 1위국인 중국을 비롯해 인도, 유럽 등 주요 당사국들이 파리협정의 이행을 지속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지만 나머지 당사국들의 이행 의지가 크게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의 탈퇴 결정은 국제적 약속 위반일 뿐 아니라 글로벌 거버넌스와 시대적 흐름에 대한 역행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번 미국의 결정은 지구 온난화 문제라는 환경적 측면뿐 아니라 향후 다양한 이슈와 관련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오늘부터 이행중단"…재협상 여지에도 탈퇴 불가피할 듯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 드러낸 '기후변화 불신' 신념을 결국 파리협정 탈퇴 결정을 하며 행동으로 옮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리협정에서 탈퇴할 것"이라면서 "협정의 비구속적 조항이 이행을 당장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는 파리협정에 가입하면서 2025년까지 온실가스를 2005년 배출량 대비 26~28% 감축하겠다는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불이익을 가져다준다"면서 파리협정이 미국 경제와 일자리에 악재라는 기존의 인식을 재차 드러냈다. 한 연구조사를 인용, 파리협정이 오는 2025년까지 2백7천만 개의 일자리를 희생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는 탈퇴를 공식화하면서도 미국과 미 국민에 도움이 되는 더 좋은 조건의 새 협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공정한 협정이 만들어지면 정말 좋겠지만 안돼도 좋다"면서 연연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재협상 요구에 대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은 재협상 불가를 분명히 했다.
◇최종탈퇴까지 4년 걸려…美 차기 정부 선택 주목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밝힌 대로 비구속적 약속의 이행중단을 먼저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가 클린에너지 대책과 가뭄·해수면 상등 대비 등을 위해 저개발국가에 약속한 30억 달러의 지원 중단 등이 포함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 회견에서 유엔 녹색기후기금(GCF)에 내는 모든 부담금을 중단하겠다고도 발표했다.
미국이 당초 상원에서 파리협정을 비준하는 절차를 밟지 않은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대로 협정을 탈퇴하는 데는 절차적 측면에서 국내적으로 큰 걸림돌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협정 규약상 2019년 11월까지 탈퇴 통보는 불가능하다. 탈퇴 통보까지 최소 2년 5개월여의 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탈퇴 선언에도 최종탈퇴까지는 협정 절차에 따라 4년이 걸릴 것이라고 미국 언론들이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에 따라 2020년 11월 "미국 차기 정부의 선택에 따라 파리협정에 복귀도 가능하다"고 보도했다.
◇도미노 탈퇴사태 빚어지나…협정이행 이완 우려
미국의 뒤를 잇는 도미노 탈퇴 사태가 당장 빚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협정 탈퇴 가능성이 지속해서 제기된 상황에서 주요 당사국들은 미국의 탈퇴를 만류하는 한편, 지속적인 이행을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 1위국인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탈퇴 선언 직전인 1일 "다른 국가의 입장이 어떻게 변하든지 관계없이 파리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도 지난 9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당선인과 전화통화에서 "중국과 프랑스는 파리협약을 포함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성과를 보호해야 한다"면서 파리협정 준수 의지를 분명히 했다.
중국은 특히 미국이 빠져나간 공백을 메우며 국제사회에서 리더십 강화의 계기로 삼을 공산이 크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선언 직후 공동성명을 통해 "파리 기후변화협정은 국제적인 협력의 주춧돌"이라며 "협정에서 제시된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이행할 수 있도록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럽과 중국, 인도 등이 파리협정의 지속적 이행을 강조하고 있지만, 미국이 빠진 파리협정의 향후 정확한 모습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고 NYT는 보도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한 나머지 당사국들이 느끼는 압박감이 줄어들 수 있고, 나머지 당사국들이 "왜 우리가 나머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리협정은 선진국만이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담하도록 한 기존 교토 기후체제(2020년 만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선진국과 개도국을 불문하고 195개 당사국이 모두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는 신기후체제의 근간을 마련한 국제 다자조약이다.
각 당사국이 설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해 지구의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세계 2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은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15%를 차지해 중국(약 25%)의 뒤를 잇고 있다.
◇"심각히 잘못된 결정"…국제사회 거센 반발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선언은 미국에서는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비판하고 "미국이 환경 이슈에 국제적 리더로 남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사실상 재고를 촉구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선언에 앞서 1일 "전 세계는 더욱 야심 차게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이행하고, 이에 따른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정상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반발하는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재협상 요구에도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트위터를 통해 "심각할 정도로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lkw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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