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일자리 만든다면서 봉사 못한다는 건 '모순'"
(의정부=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생계가 곤란한 서민을 위해 운영되는 벌금 대체 사회봉사제도가 사실상 장애인들에게는 가로막혀 있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4일 의정부지법 등에 따르면 형사8단독 김기현 부장판사는 김용란(51)씨 등 중증장애인 3명이 검찰을 통해 청구한 사회봉사허가를 지난달 11일 기각했다.
집행위원장직의 김씨 등 의정부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장애인 3명은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지난 2월 24일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각각 90만∼28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2015년 활동보조 예산 삭감 문제로 항의하는 과정에서 의정부시청 시장실을 점거하고 공무원을 다치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모두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확정된 항소심 결과에 이들은 생계 곤란을 이유로 벌금을 대신해 사회봉사를 받겠다는 의사를 법원에 밝혔다.
경제적인 이유로 벌금을 낼 수 없는 사람의 노역장 구금을 최소화하기 위해 2009년부터 시행된 '벌금 미납자의 사회봉사 집행에 관한 특례법'에 의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이들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사회봉사를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해 그냥 벌금을 내라고 결정했다.
이용호 의정부지법 공보판사는 "질병이나 그 밖의 사유로 사회봉사를 이행하기에 부적당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해당돼 기각이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장애인 중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많고 다들 벌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서 "그런데도 장애인이라서 사회봉사를 할 수 없다고 아예 배제되는 건 명백한 장애인 차별"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지난달 말 기각 결정문을 받아보고 즉각 항고했다. 그러나 김씨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은 항고를 포기했고, 이들은 지난달 30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도 냈다.
벌금 90만원을 선고받은 이경호(58) 의정부자립생활센터 소장은 "기각 결정문을 보니까 느낌이 항고한다고 해도 되지가 않을 것 같았다"면서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장애인 일자리를 만든다고 하면서 장애인이 정작 봉사활동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한다는 건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유전병인 근육병으로 신체활동이 많이 불편하긴 하지만 사십대까지는 정유회사에서 품질관리 일을 할 정도로 직장생활도 해냈었다"면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낭독 등 몸이 불편해도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 얼마든지 있다"고 덧붙였다.
경기장애우권익연구소 소장인 최정규 변호사도 이에 대해 "벌금미납자법은 질병을 직접적인 불허가 사유로 기재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장애를 직접 열거하고 있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이어서 "법원이 장애인은 무조건 사회봉사 이행에 필요한 신체적 능력이 없다는 전제하에 이러한 신청을 기각한 것은 장애인 차별 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su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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