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 모의법정…가해자 실형에 박수 터져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이승환 기자 =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 피고인은 범행 이후 계속해서 범행을 부인하다가 피해자로부터 고소를 당하자 다시 피해자를 무고하는 등 죄질이 불량한 점을 고려할 때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판사가 주문(主文)과 선고이유를 읽고 재판 종료를 선언하자 법정 여기저기서 방청객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저는 성폭력을 당해 눈앞이 캄캄한데 피고인은 도리어 저를 무고죄로 고소했습니다. 이 고소야말로 무고입니다"라는 피해자의 호소가 받아들여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로 2일 오후 3시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법학관에서 열린 성폭력·무고 사건의 모의법정 풍경이다.
이날 재판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남학생 김민준씨가 시험 준비모임에서 만난 같은 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한, 가상의 사건에 대한 심리로 진행됐다.
김씨는 피해자가 술에 취한 것을 틈타 성폭행했고, 피해자가 고소하자 도리어 피해자가 무고했다며 맞고소했다.
반면 김씨는 법정에서도 '피해자가 먼저 키스했다', '피해자가 나를 짝사랑했다'고 진술하며 합의에 따른 성관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김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비록 모의법정이지만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실제 법정과 다를 바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50여석 규모 공간을 가득 채운 방청객들은 김씨와 피해자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 중간중간 메모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 방청객은 김씨가 '합의에 따른 성관계'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쏘아보는 등 적의를 드러냈다.
그러나 방청객들은 김씨가 "제가 철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성욕을 참았어야 했습니다"라고 최후 진술을 하자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일부 방청객은 선고를 받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난 피고인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이날 심리한 사건은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여러 흔한 사건을 조합·재구성한 것이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평소 행실과 짝사랑한 사실 등 '정황 증거'를 내세운 무고죄 고소가 성폭력 피해자를 위협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며 "성 평등한 사회를 위한 성폭력 판례를 뒤집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1월에는 가수 겸 배우 박유천(31)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던 여성 이모씨가 서울중앙지법에서 무고·공갈미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역시 박씨를 고소했다가 무고 등 혐의로 기소된 송모(24·여)씨도 같은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comm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