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의료지원 25개국 찾아…北·中·러 등 당시 적국까지 포함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전 세계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모두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좀 더 노력했으면 합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전 세계 25개국을 모두 방문한 뒤 한국을 찾은 재미동포 한나 김(34)씨는 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4개월여에 걸친 긴 여정을 마친 소감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지난 1월 19일 시작한 김씨의 여정은 지난달 27∼30일 북한 방문을 끝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유엔군 일원으로 우리 편에서 함께 싸운 16개 참전국과 5개 의료지원국은 물론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 우리에 맞서 싸웠던 국가들까지 방문했다.
김씨는 찰스 랭글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의 수석보좌관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12월 랭글의 정계 은퇴와 함께 워싱턴 정가를 나와 전 세계의 참전용사들을 만나기 위해 짐을 꾸렸다. 일부 후원도 있었지만 여행경비 대부분은 자비로 충당했다.
그는 굳이 북한까지 방문한 이유에 대해 "북한이 6·25전쟁의 중요한 당사국인데 가지 않으면 모든 참전국을 방문한다는 제 계획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4명의 미국인이 북한에 억류된 상황에서 방북하는 게 두렵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여행 계획을 짜는데 북한이 계속 미사일을 쏘고 긴장이 고조됐다"면서 "그래도 위험을 무릅쓰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위험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른 방문국과는 달리 북한에서는 한국전쟁에 참여한 퇴역군인을 만나지 못했다. 대신 한국전에 참전했다 전사한 이들의 묘지를 찾았다. 지난 2013년 7월 평양에 문을 연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묘'다.
남쪽에 총부리를 겨눴던 이들의 묘지를 찾은 이유가 궁금했다. 김씨는 "추모하러 간 것이 아니며 민족의 아픔과 전쟁의 비극을 느끼기 위해 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할 수 없이 싸우다 전사한 분들도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 슬펐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씨는 "민족의 아픔이 한반도 평화라는 기쁨으로 바뀌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면서 "기도 뒤에 차고 있던 팔찌에 달린 십자가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내 기도가 그곳에 남겨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남북 간 평화로운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비유하자면 자식 입장에서 이혼한 부모가 재혼은 하지 않더라도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비슷하다"며 웃었다.
김씨는 "북한 방문은 내 평생 가장 무서운 결정이었지만 최고의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내가 북한에서 보고 들은 것이 모두 사실은 아니겠지만, 또 모두 거짓도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참전군인을 만나기 위해 다시 북한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북한의 선전문구만 들을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북한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국전쟁에 대해 듣고 싶다. 그게 진실이 아니더라도 그분들이 가진 기억이니 의미가 있다"는 게 이유다.
김씨는 전 세계 참전용사들과의 만남을 담은 사진전을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다. 참전용사들의 사연이 적힌 스토리보드도 함께 설치된다. 그들의 이야기는 책으로도 엮을 계획이다.
김씨는 "저는 참전용사에게 한민족의 감사를 전하고, 한민족에게는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억해 전쟁의 비극을 평화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라며 앞으로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싶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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