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준비한 듯…보안요원, 범인 출입 못막고 '도망' 초기대응 구멍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한국인 1명을 포함해 40명 가까운 목숨을 앗아간 필리핀 카지노 총격 및 방화 사건의 범인은 별다른 제지도 받지 않고 유유히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4일 이번 사건이 발생한 '리조트 월드 마닐라'가 공개한 일부 폐쇄회로(CC) TV 녹화영상을 보면 자정을 막 넘긴 지난 2일 0시 7분(현지시간)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 3터미널 맞은 편에 있는 이 복합 리조트에 범인이 택시를 타고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린 이 남성은 평상복에 검은 모자를 쓰고 등에 가방을 메고 있었다. 총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여성 2명을 뒤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카지노가 있는 리조트 2층으로 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범인은 마스크를 쓰고 숨겨둔 M4 소총을 꺼내 들었다.
그가 카지노 입구에 설치된 금속탐지 검색대를 무시하고 그 옆으로 그냥 지나가자 보안요원이 달려가 멈춰 세우려 했다. 그러나 범인이 총을 휘두르자 보안요원이 황급히 카지노 밖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 리조트 측이 초기 대응을 제대로 못해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100만 정 이상의 총기가 불법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진 필리핀에서는 총기 사건이 자주 일어나 호텔이나 쇼핑몰, 등 다중이용시설에는 검색대가 설치돼 있고 무장 보안요원들도 배치돼 있다.
범인은 천장과 대형 TV 스크린에 총을 몇 차례 쐈고 카지노 고객들과 직원들이 겁에 질려 대피했다. 이들 사이에서는 'ISIS'(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의 옛 이름)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그는 카드게임 테이블, 슬롯머신에 준비해온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였다. 카지노가 화염과 연기로 일대 혼란에 빠진 가운데 범인은 카지노 칩이 보관된 창고로 갔다.
잠겨진 창고 문에 여러 차례 총을 쏴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 1억1천300만 페소(약 26억 원) 어치의 카지노 칩을 가방에 담았다.
그가 리조트에 도착해 카지노 칩 창고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1분. 서두르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카지노 내부 구조를 잘 알 정도로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것처럼 보였다.
범인은 이후 리조트 지하 계단에 상처를 입고 앉아 있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 이 리조트의 아민 고메스 최고보안책임자(CSO)는 범인이 보안요원과 교전 과정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범인은 얼마 뒤 리조트의 5층 객실에서 불에 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로 판단하고 강도 사건으로 조사하고 있다. 범인이 카지노에서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현지 GMA뉴스에 따르면 오스카 알바얄데 마닐라 지방경찰청장은 범인을 태운 택시기사의 진술 등을 근거로 그가 혼혈로 필리핀어(타갈로그어)를 유창하게 한다고 밝혔지만 정확한 신원은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kms123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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