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비행단 초청…"막강한 전투력 갖춘 한국군 인상적"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6·25전쟁 당시 100회 출격하며 전공을 세워 '불사조'로 불린 미국 예비역 공군 대령(조종사 출신)이 65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공군 제11전투비행단은 5일 유진 메츠링(Eugene B. Mechling Jr·93) 미국 예비역 공군 대령을 초청해 기지 변천사를 소개하고 대한민국 공군의 발전상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메츠링 대령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전투 조종사로 참전해 100회 출격이란 대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미국으로 돌아간 지 65년 만에 한국을 찾은 메츠링 대령은 1925년 태어나 1949년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 소위로 임관했다. 2년 간의 혹독한 비행훈련 과정을 거쳐 당시 최신예 전투기 F-84 썬더젯 전투조종사가 됐다.
이후 6·25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중위 계급장을 달고 대구 기지에 있던 제49폭격비행단 일원으로 참전했다. 1951년 11월 첫 공중임무를 시작으로 1952년 12월까지 한국에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F-84 전투기를 몰고 총 100회 출격하면서 적기와의 공중전은 물론 적의 교량과 주요 시설을 폭격하는 등 다양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참전 중 미국에서 아들이 태어났음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전우들과 전투를 거듭하며 전의를 불태웠다.
1952년 11월 23일, 평양 인근 강가에 있는 철도 폭격 임무를 수행 중이던 메츠링 대령은 전투기에서 폭탄을 투하한 후 높은 고도를 유지하며 다시 본대로 합류해야 했다. 그러나 실수로 다이브 브레이크(Dive Break·급강하 브레이크)를 밟아 전투기의 고도가 급격히 낮아졌다.
그 순간 아군 전투기의 경고 신호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북한군 미그기가 기총을 발사하며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다행히 회피기동을 하며 적기를 따돌리고 본대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전투기 꼬리 날개에는 40mm 탄에 맞은 구멍 2개가 남아 있었다.
메츠링 대령은 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공적을 인정 받아 무공훈장을 받았으며, 이후 미국 루이지애나에 있는 제360비행단으로 복귀한 뒤 비행교관을 거쳐 다양한 보직을 맡았다. 1962년 베트남전에 참전해 활약했고, 1972년 공군대령으로 군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이날 대구기지에서 비행단 현황과 변천사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후 102전투비행대대 역사관을 찾아 한국 공군의 발전사를 살펴봤다. 이어 항공기 격납고로 이동한 메츠링 대령은 전투기에 탑재하는 미사일을 비롯한 최첨단 무장을 둘러보며 한국 공군의 막강한 화력에 감탄했다.
동북아 최강의 F-15K 전투기에 탑승한 것은 물론, 활주로에서 임무수행을 위해 출격하는 F-15K 전투기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메츠링 대령은 "6·25전쟁 당시 출격했던 이곳에 다시 돌아오니 감회가 남다르다"며 "전우들과 함께 피와 땀으로 지킨 대한민국이 눈부시게 발전한 것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막강한 전투력을 갖춘 한국군의 모습이 인상적이다"고 방문 소감을 피력했다.
그는 "엄청나게 감명을 받았다. 이 나라가 이뤄온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이곳에 대해서 거의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 변했다. 정말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구기지에서 와서 보니 전우들은 충분히 준비됐음을 알고 있다"면서 "제가 여기 와서 모든 것들을 봤을 때 우리가 성공했음을 알 수 있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행사를 마친 후 공군은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100회 출격 임무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발전에 크게 기여한 메츠링 대령에게 정경두 공군참모총장 명의의 감사장을 전달했다.
그는 오는 10일까지 유엔기념관, 현충원 등을 둘러본 뒤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three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