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대신면 농민 이수재씨 "평생 이런 가뭄은 처음" 한숨
1천700평 밭 고구마 순 말라비틀어져도 속수무책
(여주=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고구마들은 지금 목숨만 겨우 유지하고 있지. 생명연장만 하는 거로 보면 돼"
낮 기온이 28℃ 이상 올라간 5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당남리에서 만난 농민 이수재(76) 씨는 가뭄 피해가 얼마나 심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애끓는 하소연을 했다.
"내가 여기서 76년을 살았는데, 올해만큼 심한 가뭄은 처음 봤다"는 이 씨는 "내가 겪은 가장 최악의 가뭄도 1970년대 중반으로 기억하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 씨는 논 1만 평(3만3천㎡)과 고구마밭 2만 평(6만6천100㎡)을 돌보는 전형적인 농사꾼이다.
맛이 좋고 영양가가 풍부해 '남한강의 붉은 보석'이라고 일컬어지는 '여주 고구마'는 이 씨에게 적지 않은 수익을 안겨줬다.
1980년대 초까지 여주 대표특산물이었던 땅콩이 중국산 땅콩에 밀려 자취를 감춘 사이 고구마가 새로운 특산물로 자리를 잡으면서 지금은 400여 고구마 전문 재배농가가 연간 3만∼4만t의 고구마를 생산해 600억∼7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올해 고구마 농사는 거의 망했다.
계속되는 가뭄에 심은 지 얼마 안 되는 고구마 순이 숨만 겨우 할딱거리며 메마른 땅에 달라붙어 있을 뿐 제대로 된 생육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씨의 집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고구마밭에 가봤다. 1천700평가량 되는 고구마밭이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바짝 말라 있었다.
50m 길이의 고구마밭 이랑마다 노랗게 말라 죽은 고구마 순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흙을 파헤쳐 고구마 뿌리를 들춰내니 물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말라 비틀어진 고구마 순 주변에는 죽은 것도 아니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처절한 생존 투쟁을 벌이는 듯한 고구마 순이 눈에 띄었다.
죽은 순을 걷어내고 전날 대신 심어놓은 것들이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농심을 외면이라도 하듯 20㎝ 길이의 새 고구마 순도 이미 줄기가 뒤틀린 채 생기를 잃었다.
이 씨는 "다 소용없어. 이것들도 다 죽어가"라며 한숨을 쉬더니 이내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는 "어제 일당 7만 원을 주고 인부 6명을 사서 고구마 싹을 심었는데, 괜히 헛돈을 쓴 것 같다"면서 "비가 와야지. 뭐 달리 방도가 없다"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씨는 이날도 집 근처 다른 고구마밭에서 죽은 고구마 순을 뽑아내고 새순을 심는 '때우기 작업'을 했다.
그는 고구마밭도 문제지만, 가뭄 때문에 물이 없어 여섯 개 다랑논 2천300평(7천600㎡)에서 모내기를 하지 못한 것이 더 큰 걱정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관정에서 나온 물로 논에 물을 충분히 다 댔지만, 올해는 관정에서 '소 오줌 누듯이 나오는 물' 때문에 논이 밭처럼 바짝 말랐다고 한다.
그는 농민들이 가뭄에 심한 피해를 보고 있는데도 시에서는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씨는 "논밭에 물을 대 달라고 시를 찾아갔었는데, 물이 없다는 말만 하더라"면서 "책상에 앉아 있지만 말고, 관정이라도 파게 지원을 해줘야 할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주시는 농업용수 부족을 해소하고자 총 20억8천만 원을 투자해 대형 관정 11개소 개발, 마을 상수도 관정 3개소 농업용수 관리 전환 등의 대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긴급용수공급 사업비 10억원 지원을 경기도에 긴급 건의했다고 지난 1일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바 있다.
경기도에 따르면 이씨의 고구마밭처럼 계속되는 가뭄으로 피해가 발생하는 경기도내 밭작물 면적은 222㏊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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