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뮤지컬 '영웅'·'명성황후'로 세계무대 개척…"영원히 쉴 때까지 달린다"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한국 뮤지컬계 대부' 윤호진 연출의 칠순 잔치에 공연계 거물들이 총출동했다.
지난 5일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열린 윤 연출의 칠순 잔치 '고고 80'에 많은 스타 연출가와 배우들이 참석해 그의 생일을 축하했다. 검은 선글라스와 재킷에 꽃을 달아 한껏 멋을 낸 윤 연출도 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송승환 PMC프로덕션 회장, 손진책 극단 미추 대표,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 구자흥 전 명동예술극장 극장장, 심재찬 대구문화재단 대표, 박민선 CJ E&M 공연사업본부장, 박민정 예술의전당 문화사업본부장, 박동우 무대디자이너 등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배우 정동환, 안재욱, 정성화, 김소현 등도 함께 자리해 파티 참석자는 100명을 훌쩍 넘겼다.
이런 공연계 거물들을 한 자리에 모은 윤 연출은 1990년대 국내에 대형 창작뮤지컬을 태동시킨 인물이다. 동시에 세계무대에 한국 창작뮤지컬을 알리는 데 앞장서왔다.
충남 당진 출신인 그는 1970년 극단 실험극장에 입단하며 공연계와 인연을 맺었다. 실력 있는 연극 연출가로 인정받았지만 "세 끼를 다 먹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힘든 시절을 버텨야 했다.
1982년 문화예술진흥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보내준 영국 런던 연수 중에 본 뮤지컬 '캣츠'를 보고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화려한 무대, 귀에 감기는 음악이 그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그는 "'캣츠'를 보면서 이건 자립이 되는 공연 예술이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더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이후 뉴욕대 공연예술대학원에서 4년간 뮤지컬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뒤 1991년 공연제작사 에이콤인터내셔날을 설립, 뮤지컬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뮤지컬을 마음에 품은 순간부터 한국 창작뮤지컬로 세계무대에 서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1995년 한국 뮤지컬 역사의 첫 장으로 통하는 뮤지컬 '명성황후'를 초연하고 1997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렸다.
2009년 선보인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영웅'도 대성공을 기록해 지금까지도 세계 여러 무대에서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그의 뮤지컬 인생을 반영하듯 이날 생일파티도 한 편의 공연처럼 꾸며졌다.
젊은 배우 27명이 그의 대표작인 뮤지컬 '영웅'의 한 곡을 개사해 불렀다. '영웅' 출연으로 개그맨에서 스타 뮤지컬 배우로 자리매김한 정성화, '명성황후'에 출연했던 김소현 등은 축하 노래로 분위기를 돋웠다.
심재찬 대구문화재단 대표는 인사말에서 윤 연출을 "끈질긴 선택과 집중을 한 사람"으로, 손진책 극단 미추 대표는 "극단적 낙관주의를 지닌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윤 대표의 큰아들이자 사회적기업 마리몬드 대표인 윤홍조 씨는 "뗏목을 타고서라도 브로드웨이에 가겠다던 아버지였다"며 "모두가 무모하다고 했던 길을 걸었던 아버지의 열정을 본받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말미에 마이크를 잡은 윤 연출은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의 마지막 부분 대사를 목이 멘 채 읊었다.
"바냐 아저씨가 좌절해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조카 소냐가 슬퍼하지 말라며 이렇게 말해요. 영원히 쉴 때가 곧 온다고요. 영원히 쉴 때까지 힘차게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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