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중동 국가들이 잇따라 카타르와 단교를 선언하면서 양측 모두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동남아 이슬람 국가들이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다.
동남아시아의 대표적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는 오랫동안 사우디아라비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같은 수니파 국가에 속해 있다.
살만 빈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올해 2월 1천500명에 달하는 수행원을 이끌고 아시아 국가를 순방했을 때도 말레이시아는 첫 방문국이 됐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살만 국왕을 최고의 예우로 환영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말레이시아 국영석유기업 페트로나스에 70억 달러(약 7조8천억원)를 투자한다는 선물 보따리를 안겼다.
최근 나집 총리와 측근들이 국영투자기업 1MDB에서 수십억 달러의 나랏돈을 빼돌렸다는 1MDB 스캔들이 터졌을 때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족도 해당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양국 지도층의 밀접한 관계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문제는 말레이시아가 카타르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점이다.
7일 말레이시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카타르는 말레이시아에 최근까지 약 120억∼150억 달러(13조4천억∼16조8천억원)를 투자했다.
지난달 중순에는 아니파 아만 말레이시아 외무장관이 카타르를 방문해 카타르의 군주인 셰이크 타밈 하마드 알사니를 접견하고 양국관계 강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슬람 종주국이자 아랍권의 '큰 형님' 격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도로 주요 수니파 아랍 국가들이 카타르를 전방위로 압박, 고립시키면서 말레이시아는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말레이시아 정부 내부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어느 한 편을 들 경우 잃을 것이 많은 만큼 이번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카타르와의 관계 강화 논의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완전히 중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억6천만 인구의 약 90%가 이슬람을 믿는 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국인 이웃 인도네시아도 대동소이한 입장을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아르마나타 나시르 인도네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지난 5일 레트로 마르수디 인도네시아 외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면서 "양국 외무장관은 카타르 단교 사태와 관련한 의견을 교환했고, 인도네시아는 유관국에 화해와 대화를 촉구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의 배경은 사우디를 중심으로 하는 주류 수니파가 이란과 대화채널을 유지하는 카타르를 고리로 시아파 맹주인 이란을 향해 패권경쟁을 선언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동남아 등지의 비아랍권 이슬람 국가들은 중립적 입장을 고수하려 들테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당사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국제문제연구소(RSIS)의 제임스 도시 수석 연구원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레이시아 등은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겠다고 할 수 있지만,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가 이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hwangc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