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항쟁 30주년] 이한열 사진전…모친 "도망가랑께"(종합)·

입력 2017-06-07 19:36   수정 2017-06-07 19:37

[6·10항쟁 30주년] 이한열 사진전…모친 "도망가랑께"(종합)·

최루탄 피격 전후 컬러사진, 장례식 학보 호외 등 첫 전시

연세대박물관·이한열기념관서 내달 8일까지 동시 진행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도망가랑께 왜 여기 있어. 안 가고 거기서 그러고 있어."

최루탄에 맞고 쓰러진 이한열 열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참이나 응시하던 이 열사 어머니 배은심(77) 여사는 손을 뻗어 사진 속 아들을 만지며 소리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이 열사를 기리는 전시회가 그의 30주기를 맞은 올해 더욱 풍성하게 열렸다.

이한열기념사업회는 7일 오후 열사 모교인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의 연세대박물관에서 '2017이 1987에게'라는 주제로 30주기 특별기획전을 열었다.

이날 개막행사는 참석자들이 연세대박물관 근처의 야트막한 언덕 '한열동산'에 놓인 '이한열기념비'까지 꽃을 들고 걸어가 절하고 다시 돌아오는 의식으로 시작했다.

전시회에서는 지금까지 발굴되지 않았던 새로운 이 열사 관련 전시품들이 대중 앞에 첫선을 보였다.

당시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속 사진사였던 네이선 벤이 촬영한 이 열사의 최루탄 피격 전후 모습 사진 2점이 이 자리에서 공개됐다.


지금까지 이 열사를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킨 사진은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그를 당시 도서관학과 2학년이던 이종창 씨가 부축해 끌어올려 세운 장면을 찍은 것이었다.

이번에 공개된 벤이 찍은 사진엔 피격 직후 아스팔트에 쓰러진 이 열사를 이씨가 부축하려 하는 모습이 담겼다. 벤은 이 열사가 피격 전 다른 학생들과 시위를 하는 장면도 포착했다.

이 열사 어머니 배 여사는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쓰러진 이 열사의 사진 앞에 멈춰 섰다.

배 여사는 아무 말 없이 사진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손을 뻗어 사진을 만지면서 소리 없이 울고, 거뒀던 손을 다시 뻗어 사진을 또 만지며 "도망가라니까 왜 여기 있느냐"고 말하면서 끝내 흐느꼈다.

배 여사는 "다음에 아들을 만났을 때 묻고 싶다"며 "도망가다가 죽었는지 아니면 맨주먹으로 투쟁하다가 죽었는지가 1번이고, 쓰러질 때 민주주의를 외쳤는지 '엄마 아빠'를 불렀는지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때 이한열이 다친 것이 오후 5시쯤이고 내가 세브란스 도착한 것이 밤 12시쯤인데, 그때 '수술할 수 있으면 수술해달라'고 주장하지 못했다. 아들이 다쳤는데 부모가 주장을 못 했다. 우리는 너를 만나면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것 같다"고도 했다.

당시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외신 기자들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네이선 벤도 올림픽과 관련해 한국을 취재하던 차에 이런 사진을 찍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연세대 학보 '연세춘추'의 1987년 7월 9일자 특별 호외판도 공개됐다. 그해 6월 9일 피격 이후 세브란스 중환자실에 있다가 7월 5일 끝내 숨진 이 열사의 장례식 소식을 다룬 것이다.

두 면으로 된 한 장짜리 호외 1면에는 '벗이여 고이 가소서 그대 뒤를 따르리니'라는 헤드라인이 적혔다.

연세춘추의 모든 정규판본을 보관하는 연세대 학술정보원도 이 호외는 소장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그 가치가 작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 호외는 연세대 85학번 임종규 씨가 30년간 보관하다가 최근 사업회에 기증했다.


어느 전투경찰이 1987년 6∼7월을 연세대 앞에서 보내며 심경을 적은 일기도 빛을 봤다.

이 열사와 동갑인 최모(51)씨는 부대 안에서는 글을 자유롭게 쓰지 못해 휴가를 나갈 때마다 기억을 되살려 일기를 썼다고 한다.

최씨는 이 열사가 최루탄에 맞은 그해 6월 9일에 대한 일기에서 "그때의 상황이야 지금 상세히 기억해낼 순 없지만, 그날 한열이는 우리의 눈앞에서 쓰러져 갔다"고 썼다.

이어 "당시 우리 중대(45중대)와 44중대가 정문을 담당해서 SY44탄을 동시에 쏘았었다. 한 개 중대에 사수가 15명 정도 되니까 약 30명이 함께 쏘아서 그 중 한 발 정도가 너무 각도가 낮았는지 한열이의 머리에서 터진 것이었다"고 기록했다.

최씨는 이한열기념사업회에 "조금이라도 (진압에서) 주춤거리면 그날 밤 고참에게 엄청나게 맞았다"며 "학생과 전경 모두에게 비극이었던 시대였다. 독재정권은 학생과 전경이 서로 미워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열사와 같은 시공간을 살면서 다른 쪽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이의 일기다.


사업회는 이외에도 연세대 동문이 기증한 이 열사 사망 당시의 유인물, 성명서, 대학 신문 등 기록 자료를 전시회에서 공개했다.

사업회 관계자는 "지금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가 있지만,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엔 이런 종이 유인물이 SNS 역할을 해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기능을 했다"며 "모두 역사와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유물들"이라고 평가했다.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시회에 참석해 "남들은 유월 항쟁을 화려한 승리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저는 22살의 평범한 후배를 지키지 못한 못난 선배로, 제가 죽었어야 할 자리에 이한열 군이 쓰러졌다는 자책감으로 30년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고통을 이겨내면서 이런 전시회를 여는 것은, 더 많은 사람에게 1987년 연세대 학생들은 무엇을 꿈꿨고 어떻게 행동했으며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꼭 보여주고 싶었다"며 "어머니(배 여사)도 30년 됐으니 우시는 것 그만하고 잘 극복해나가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표창원 의원은 "1987년 저는 경찰대 3학년으로 너무나 편안하게 경찰대에서 공부하고 있었다"며 "제가 경찰대가 아니라 연세대를 갔으면 이 열사 자리에 제가 있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제가 전경 신분으로 최루탄을 쏜 그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마음속 빚이고 부채였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전은 내달 8일까지 연세대박물관과 신촌 이한열기념관 등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j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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