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천재를 죽였는가·서울 문학 기행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 = 1995년 등단한 시인 서정학(46)이 19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시인에게 시 쓰기는 "입안에서 오물거리며 씨를 멀리 풋, 뱉는 것처럼 제법 몰지각한, 개인적인 또, 그런 일"('제일 앞자리엔 채리가 앉는다')이다. 34편의 시는 중력을 거부하듯 시라는 장르의 문법과 관행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사소한 일상을 무심하고 재치있는 언어로 기록하다가, 어느새 외계인을 만난다.
"번개가 번쩍, 쳐서 물에 잠긴 볼품없는 거리를 비추었다./ 나는 하늘을 보며 프랑스,/ 라고 외쳤다.// 깜짝 놀란 병이 턱,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프랑스' 부분)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도 부들부들 떨고 있던 그들 중 한 명이 자신이 첫번째, 혹은 두번째로 이 땅에 제대로 착륙한 외계인이라고 우겼다. 다른 하나는 60억 자기 종족이 끊임없이 새 땅을 찾아 떠났으므로 아마도, 지구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들도 있을 거라 우겼다. 골목 곳곳에 서 있는 종이상자들이 그 증거라고 목이 멘 채 말했다." ('뜨거운 사랑' 부분)
문학과지성사. 108쪽. 8천원.
▲ 우리 집 문제 = '공중그네'의 작가 오쿠다 히데오(?田英朗)가 가족을 소재로 쓴 단편 6편을 묶었다.
'천사표' 아내가 오히려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결혼 2개월차 남편, 부모가 이혼 직전까지 가고도 불화를 숨겨온 사실을 눈치챈 고등학교 3학년 딸, 인기작가인 남편이 잘 나갈수록 소외감을 느끼는 전업주부 아내 등이 주인공이다. 누구나 겪을 법한 평범한 가정사를 작가 특유의 따뜻하고 해학 넘치는 시선으로 그렸다.
재인. 김난주 옮김. 320쪽. 1만4천800원.
▲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 소설가 최인호(1945∼2013)의 산문을 모은 유고집.
신문·잡지·문예지에 실은 원고와 습작노트에 남긴 글들을 엮었다. 작가의 역사관과 천재론, 문학에 대한 단상을 엿볼 수 있다.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는 한국전쟁 때 화가 이인성(1912∼1950)의 죽음에 관한 글이다.
"예술가는, 천재의 예술가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는 신에게서 태어날 뿐이다. 왜 신에게서 태어난 그를 죽여야만 하는가. 나는 총을 쏘지 않았다라고 자위하지 말라. (…) 먼 훗날 그대들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예술가와 더불어 살지 못하고, 예술가를 추모만 했었던 바보와 같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었다고."
여백. 352쪽. 1만4천800원.
▲ 서울 문학 기행 = 문학평론가인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서울시내 곳곳에 서린 한국문학의 흔적을 찾아 기록했다.
윤동주의 누상동 하숙집은 다섯 달 남짓 동안 열 편의 시를 쓴 작품의 산실 역할을 했다. 이광수의 홍지동 산장은 지식인의 변절과 문학인의 재능이 교차하는 장소다. 이상의 '날개'에서 주인공이 "한 번만 더 날자꾸나"라고 외친 장소는 현재 소공동 신세계백화점 옥상이다. 시인 김수영이 말년까지 살았던 구수동 41번지 터는 2차선 도로로 변했다.
저자는 "우리들의 서울을, 우리들의 문학을, 이 둘 사이 '밀월'의 사연을 진귀하게 여기실 수 있도록 쓰고자 했다"고 말했다.
아르테. 380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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