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 "민주주의, 얼마나 취약한지 말하고 싶었다"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요즘 매일 저녁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야외 공연장에 가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현대극 '줄리어스 시저'를 볼 수 있다.
매년 열리는 무료 셰익스피어 연극 행사 중 하나인데, 유독 올해 이 작품이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논란은 주인공 줄리어스 시저 역할을 맡은 배우 그레그 헨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꼭 닮았기 때문이다.
'하필' 그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길고 덥수룩한 금색 머리, 검은색 정장, 허리 벨트를 덮는 기다란 넥타이 차림이다. 걷는 모습도 트럼프 대통령을 닮았다.
시저의 부인 칼푸르니아 역시 슬로베니아 출신인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처럼 슬라브어 억양이다.
문제는 내용이다. 정치극인 이 연극은 기원전 로마의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시저와 그의 부하 브루투스를 통해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과 권력의 허무함을 이야기한다.
극 중 시저는 정적들에게 암살당하는데, 현직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한 주인공이 피로 물든 모습을 보면 관객들은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밖에 폭력과 노출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오후 8시 시작하는 공연 티켓을 구하려면 새벽부터 줄을 서야 한다. 이런 열성 관객들에게 '트럼프 닮은꼴' 배우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관객 조지 플리아카스(39)는 "고대 로마 정치와 현대 미국 정치의 비유가 흥미롭다"며 "2천년 전에 있었던 일에서 현대 정치의 해석을 본다"고 AP통신에 말했다.
다른 관객 마틴 마르굴리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저와 동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야심가였던 시저에 비교되는 걸 좋아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관객 로라 셰퍼는 "솔직히 충격적이고 불편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는 분명 대통령이며, 무대 위에서라도 대통령을 암살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작품을 연출한 오스카 유스티스는 극단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우리 조상들의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얻어냈고,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민주주의와 함께했지만, 민주주의는 순식간에 날아가 버릴 수 있는 취약한 제도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23일 시작된 이 공연은 이달 18일까지 계속된다. 극단 측은 공연 전 관객들에게 작품이 폭력과 노출 장면 등을 포함하고 있다고 공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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