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서 30주기 문화제…장례행렬 재연, '베 가르기 춤사위'도
연세대선 30주기 추모제…"또다른 30년 기약"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김지헌 이승환 기자 = 굳게 다문 입술과 커다란 눈, 짙은 눈썹.
노란 바탕에 최루탄 포연 같기도 한 구름이 그려지고, 테두리에는 흰 국화를 두른 이한열 열사의 대형 영정이 30년만에 다시 서울 도심에 등장했다.
영정을 얹은 검은색 영구차는 9일 오후 6시30분 서울광장을 출발했다. 무명옷과 이 열사 얼굴이 그려진 흰 티셔츠를 번갈아 입은 풍물패 약 40명이 앞장서서 영구차를 이끌었다.
영구차 뒤로는 '그대 가는가 어딜 가는가', '한열이는 부활한다', '한열이 뜻 이어받아 군부독재 타도하자' 등 1987년의 구호를 담은 만장 20여개가 뒤따랐다.
이와 대조적으로 만장을 든 사람들과 행렬에 동참한 시민들은 2017년 구호인 "적폐를 청산하라"고 외쳤다.
서울광장에서 출발해 광화문 사거리까지 다다른 행렬은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한바탕 풍물놀이를 한 뒤 다시 서울광장으로 되돌아갔다.
이날은 이 열사가 반정부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고 쓰러진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다. 행렬의 대오가 돌아온 서울광장에서는 이한열기념사업회 주최로 이 열사 30주기 문화제 '2017이 1987에게'이 이어졌다.
1987년 7월 9일의 장례행렬 재현은 문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셈이었다.
장례행렬이 끝나자 30년 전 이 열사 장례식에서 살풀이 춤을 췄던 이애주 전 서울대 교수의 '베 가르기 춤사위'가 이어졌다.
이 전 교수는 흰 소복을 입고 흰 족두리를 쓴 채 나와 진혼의 몸짓을 그렸다. 이내 광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긴 베를 문화제 참가자들이 늘어서 붙잡자 몸으로 그 베를 가르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가 흐느끼듯이 쓰러지면서 한 발자국씩 나아가자 긴 베가 조금씩 찢어지고 마침내 좌우로 두 동강이 났다.
이 전 교수는 '님을 위한 행진곡' 태평소 연주와 참가자들의 합창에 맞춰 이 열사의 영혼을 상징하는 조화를 들고 다시 무대로 돌아가 춤을 이어갔다.
장례행렬과 진혼의 춤사위 후에는 이한열합창단과 노래를찾는사람들, 꽃다지, 4·16합창단, 전인권밴드, 안치환과 자유 등의 공연과 추모 영상 상영이 계속됐다.
이날 사회를 맡은 배우 박철민씨은 "30년 전 오늘 많은 시민과 학생이 군부독재 종식 위해 거리를 나섰다. 그 함성이 헛되지 않고 촛불함성으로 이어졌다"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한 촛불집회가 6월 항쟁을 계승한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는 중학교 때 이 열사와 같은 반이었다는 남다른 인연을 말하기도 했다.
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촛불시민 여러분이 큰일을 했다. 박근혜를 감옥으로 보냈고 촛불 대통령을 모셨다"며 "촛불 대통령은 앞으로 노동자·농민이 자기 목숨 스스로 끊는 일이 없도록 민주주의를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최측 추산 2천명(경찰 추산 800명)이 참석한 문화제에 온 시민들은 김밥을 나눠먹고 서로 기념 사진을 찍는 등 무거운 분위기보다는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다만 이 전 교수의 춤사위 때는 일순 조용해지며 숙연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무대 앞에 있던 참석자 김모(30·여)씨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 나오자 갑자기 슬픔이 북받친 듯 구석자리로 옮겨 통곡하듯 눈물을 흘렸다.
30년 전 이 열사가 쓰러진 현장에 있었다는 연세대 84학번 정연철(52)씨는 "당시는 '비선실세' 등장 때보다 더 절망적이었다"며 "도저히 군부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한열이의 죽음이 전환점이 됐다"고 회상했다.
외국인 참석자들도 눈에 띄었다. 인근을 산책하다 호기심에 왔다는 프랑스인 막상스 르 팔러(Maxence Le Falher·32)씨는 "6월 항쟁에 대해 잘 모르지만 영상만 봐도 당시 이 열사의 죽음이 한국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음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오후 이 열사의 모교인 연세대 캠퍼스 내 '한열동산'에서는 이 열사의 30주기 추모제가 기념사업회 주최로 치러졌다.
추모제에 참석한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한국의 학생운동사를 이 열사 중심으로 연구해 책으로 집필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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