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스 "트럼프 정부에선 4·3에 대한 미국 사과 어려워"

입력 2017-06-09 17:24   수정 2017-06-10 10:43

커밍스 "트럼프 정부에선 4·3에 대한 미국 사과 어려워"

제2회 4·3평화상 수상…"4·3 미국 책임 막중…'학살' 표현 바람직"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브루스 커밍스(74) 미국 시카고대학교 석좌교수는 9일 "트럼프 정부에서는 4·3에 대한 미국의 사과나 배·보상을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제2회 제주4·3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커밍스 교수는 이날 라마다프라자 제주호텔에서 시상식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정부였다면 논의가 이뤄질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서도 최악의 대통령이다. 그가 사과하거나 배상하는 건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4·3 70주년을 앞두고 유족회와 각계 단체 등으로 구성된 4·3범국민위는 미국에 4·3의 책임을 묻고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커밍스 교수는 "4·3 당시 미국이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었던 만큼 미국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인의 한사람으로서 4·3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며, 희생자에 진심 어린 사과를 드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인 대다수는 4·3은 물론 한국전쟁도 잘 모른다. 미국에 4·3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는 작업은 어려울 것"이라며 "다만 노근리 사건 유족과 생존자들이 미국에서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던 사례가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4·3'을 어떤 단어로 정의할지에 대해서는 "사건(incident)이라는 표현은 애매하며, 누가 소요사태를 일으켰고 봉기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진압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학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헌법에 따라 탄핵 과정을 거치고 선거를 치러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기까지 어려운 과정이었음에도 성숙한 시민사회의 모습을 보여줬다. 세계 각국에 귀감이 될 것"이라며 이를 미국에 소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시상식에 앞서 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로 오랜 기간 투쟁이 이어진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방문하기도 했다.

커밍스 교수는 미국의 한반도 전문학자이며 한국 현대사 연구의 세계적 석학이다. 그가 저술한 '한국전쟁의 기원'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된 원인을 다각적으로 규명해 국내외에서 한국전쟁을 이해하는 중요한 지침서가 됐다.

그는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제주도 인민위원회에 관해 서술하면서 4·3사건의 배경과 원인으로써 지역의 역사 문화적 공동체성을 강조했다. 이 책은 방대한 미국 정부의 미공개 자료와 한국 내 사료를 기반으로 한 실증적인 연구 보고서로, 1980년대 한국 현대사 연구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6·25전쟁'을 '한국전쟁'으로 바꾸며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한국 현대사'라는 저서에서도 4·3사건의 원인과 전개 과정, 결과를 자세하게 서술했다.

커밍스 교수는 지난해 10월 제6회 제주4·3평화포럼에 참가해 '미국의 책임과 제주의 학살'이라는 주제로 기조강연했다. 지난달 26일 외교부 주유엔대표부 주최로 유엔본부에서 처음 열린 5·18 국제학술대회에서도 "광주는 물론 미군정 아래 자행된 4·3에 대해서도 미국이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그는 1967년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온 이후 한국 문제에 관심을 두고 한국 현대사 연구에 몰두해왔으며, 정치학자인 한국인 우정은 박사(미국 버지니아 스윗브라이어대학교 총장)과 결혼해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이날 오후 라마다프라자 제주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은 이문교 4·3평화재단 이사장의 개회사와 경과보고, 수상자 공적 보고, 시상, 강우일 4·3평화상위원장 인사말, 기관장 축사, 수상 연설 순으로 진행됐다.

이어 제주 출신 성악가 강혜명이 4·3의 노래인 '빛이 되소서'를 비롯해 '잠들지 않는 남도', '유 윌 네버 워크 얼론'(You will never walk alone) 등의 곡을 선사했다.

애초 시상식은 지난 4월 1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커밍스 교수가 제주에 방문하기 위해 탑승한 항공기가 응급환자 발생으로 긴급 회항하는 바람에 연기됐다.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5만 달러가 수여된다.

4·3평화상은 4·3의 진실 규명에 공헌하거나 세계 평화와 인권 신장에 이바지한 국내외 인사 가운데 수상자를 선정해 격년으로 시상한다. 제1회 4·3평화상은 4·3을 담은 소설 화산도를 집필한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씨가 수상했으며, 평화·인권운동가인 무하마드 이맘 아지즈가 특별상을 받았다.

atoz@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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