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무정' 100년…"대중·지식인 독자 통합한 텍스트"

입력 2017-06-10 14:00  

이광수 '무정' 100년…"대중·지식인 독자 통합한 텍스트"

"등단제도로 다시 분리…독자 계몽하던 이광수 시대와 얼마나 다른가"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한국 최초의 근대적 장편소설로 꼽히는 춘원 이광수(1892∼1950)의 '무정'이 세상에 나온 때가 꼭 100년 전이다. '무정'은 1917년 1월1일부터 같은해 6월14일까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126차례에 걸쳐 연재됐다. 한국 근대문학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는 최근 펴낸 통권 441호를 '무정' 100주년 특집으로 꾸미고 한국문학에서 이 소설의 의미를 다양한 각도로 조명했다.

전은경 경북대 기초교육원 초빙교수는 작가나 작품 대신 신문이라는 매체와 독자를 중심에 놓고 '무정'을 바라본다.

당시 일본에서는 지식인 독자층과 여성 독자층이 서로 다른 작품을 즐겨 읽으며 남성형·여성형 소설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무정'이 연재된 매일신보는 남녀 독자가 같은 작품을 즐기던 장으로 기능했다.

전 교수는 '무정'에 대해 "여성, 대중 독자적 경향을 만족시키면서 지식인 독자층들의 지적 갈증도 채워주었다"며 "양가적 독자의 경향을 모두 만족시키며 성공을 거둔 텍스트"라고 말했다.





이광수는 여자 주인공 영채의 강간사건을 13회 연재분에 걸쳐 선정적으로 묘사하며 대중 독자의 '훔쳐보기' 욕망을 자극했다. 한편으로 잡지 '개벽'에 참여한 김기전(1894∼1948) 같은 지식인 독자들도 무정에 열광했다.

한글소설을 외면하던 남성·지식인 독자들이 '무정'을 읽은 데는 남자 주인공 이형식의 역할이 컸다고 단국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박수빈씨는 분석했다.

"이 평범한 개인은 자신의 운명과 대결하면서 많은 갈등을 겪지만 그 과정에서 항상 진취적 태도를 잃지 않는다. 청춘의 사랑과 방황 끝에서 배움으로 깨우치고 교육으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결심하는 이 식민지 지식인 청년의 모습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무정'이 통합한 독자층은 얼마 못 가 다시 나뉜다. 이 분화가 지금까지 10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저자들의 진단이다.

전 교수는 "1920년대로 넘어오면서 한국문학은 문예 등단제도와 추천제도를 통해 이 통합의 과정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독자층의 통합은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이 나누어졌다"고 말했다.







박씨는 정부가 필독서를 선정하고 독서감상문 제출을 의무화한 1960년대 '독서생활화 운동' 등이 "소수의 순수문학 작품들에 문학적 권위를 부여하고, 독자들의 텍스트 읽기의 자발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육적 기능과 긴밀하게 연관된 우리 독서문화가 100년 전 이광수가 '무정'에서 보여준 계몽주의적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독자를 계몽의 대상으로, 독서를 그 방편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이광수의 시대에서 우리 문학은 얼마나 나아갔을까. 자기욕망에 완전히 충실할 수 없는 대중-독자와 그들을 쉽사리 타자화하는 문단 사이의 동상이몽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은 아닐까."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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