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작가 강상빈·강상우, 아트선재서 '그레이트 대디' 展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1층 전시장 바닥이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책으로 가득 찼다.
9일 오전 거대한 책 '좌판'과도 같은 이곳에서 만난 강상빈(43)·강상우(40) 작가가 책들을 대하는 손길과 눈길은 조심스럽고 애정이 가득했다.
두 사람은 3살 터울 친형제다.
이 책들은 아버지인 강희성 전 동아서원 대표가 1970년대부터 30년간 광화문 일대에서 서점과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모으고 보관해온 것들이다.
형제작가는 아버지가 퇴직한 뒤 원당역 인근의 한 창고에 15년간 보관했던 책 중 "극히 일부인" 5천 권을 추려 '그레이트 대디'(Great Daddy) 전시에 내놓았다.
과묵한 듯 보이던 두 작가는 아버지 이야기에 갑자기 말이 빨라졌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서점 규모는 작았지만 귀한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이 많았던 덕분에 라디오 DJ 김광한, 도올 김용옥 등 명사들이 꾸준히 찾았다.
잊지 못할 일화들도 많다.
"1980년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누군가 집 대문을 두들기는데 낯이 익어요. 알고 보니 아버지인데 삭발을 하셨더라고요. 어릴 때라 아버지가 없어진 줄도 몰랐는데 공산주의 서적을 몰래 판 것이 발각돼서 몇 달간 안기부에 끌려가셨던 거에요. 어머니가 말없이 책을 태우던 기억도 나네요."(강상빈)
이 때문에 두 사람에게 책은 '읽을거리' 이전에 일상의 오브제이자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존재해왔다.
두 사람은 홍익대 미대 회화과를 나란히 졸업한 뒤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이들은 최근 칠순이 넘은 아버지가 책 관리를 점차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고 책을 사회적으로 함께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마침 아트선재센터 김선정 관장이 올해 1월 이 책들을 활용한 전시를 제안하면서 '그레이트 대디'가 마련됐다.
관람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책을 무료로 집어가고, 그에 따라 전시장 풍경도 계속 변화한다.
관람객들이 집어간 책들의 사진을 인화해 전시장 한쪽 벽에 붙이는 작업도 전시의 일환이다.
"아버지가 사실 책들과 헤어지는 것을 내심 섭섭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무언가 남겨드리고 싶었어요. 자신이 평생 모았던 책들이 이렇게 사회적으로 순환하는 모습을 시각적인 결과물로 표현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강상빈)
아트선재센터는 이 전시를 "한 아버지의 물질적 유산인 책과 그의 '제작과 보관'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시각 예술을 행하는 두 아들을 통해 책의 '분배와 재생산'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역할에 관한 인식을 다루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최근 전시장을 찾은 아버지는 서점과 출판사를 운영하던 시절을 떠올린 듯 "단행본은 단행본끼리 있어야 하는데…"라며 혼잣말을 했다고 상우씨는 전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시대를 많이 타는 대중적인 책들 대신 원전들을 다룬 이유는 시대를 넘어 필요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며 뿌듯한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고.
"이번 전시는 사람들과 함께 '아버지의 책장'을 완성해가는 것이기도 해서 더 기대돼요."(강상우)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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