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당 참패, 노동당 약진엔 청년표가 결정적 영향
반(反)브렉시트 정서, 구직난 등이 청년층 자극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 "영국 조기 총선에서 보수당이 참패하고 노동당이 약진하는 정치적 격변에는 청년들의 투표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가디언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영국 언론 매체들은 9일(현지시간) 청년들의 투표율이 매우 높아지고 과거보다 훨씬 더 압도적으로 노동당을 지지한 것이 선거 판세를 갈랐다고 분석했다.
나아가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데 그치지 않고 지속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젊은 유권자들이 영국의 정치지형을 재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직 세부 투표 데이터는 나오지 않았으나 선거 전후 여론조사와 출구조사 등에 근거한 분석에 따르면 우선 청년층 투표율이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다.
이번 총선 투표율은 69%로 1997년 이후 최고치였으나 2015년 총선보다는 불과 2% 높아진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선거 전 서베인션의 여론조사에선 18~24세 유권자 중 투표할 것이라고 밝힌 비율이 82%였다. 이는 2015년 선거 때의 43%에 비해 거의 두 배다. NME 조사에선 35세 이하 청년 투표율은 56%로 지난 선거 때보다 12%포인트 증가했다.
아울러 청년층의 노동당 지지율은 전체 평균치보다 51%포인트 이상 높았다. 반면 65세 이상 노인층의 보수당 지지율은 평균치보다 32%포인트 높았다.
노동당 지지율은 특히 청년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더 높았으며, 보수당 지지율은 은퇴한 연금생활자가 많은 지역에서 높았다.
맨체스터대학 정치학자 로브 포드 교수는 지난 7년 동안 이런 세대별 정당 지지 격차가 14%포인트에서 83%포인트로 급증하는 등 정치적 양극화가 급격하게 심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이번 총선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힘을 현실에서 효력이 나타나게 한 첫 사례라면서 이를 청년과 지진을 합성한 단어인 '청년지진'(youthquake)으로 표현했다.
물론 여러 소수정당 지지표가 노동당과 보수당 양당으로 대거 이동하고,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UKIP) 지지자들의 표도 보수당뿐만 아니라 노동당도 비슷한 비율로 빼앗아오는 등 다른 요인들도 선거결과에 영향을 줬다.
그럼에도 정치전문가들은 청년층이 대거 투표장에 나오고 노동당을 밀어줌으로써 제러미 코빈의 노동당 지지율이 이전 선거 때보다 10%나 늘어나 토니 블레어가 이끌던 시절 노동당의 기록(이전 선거보다 9% 증가)을 깰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청년들을 '항의와 시위'에 그치지 않고 실제 투표장에까지 나가도록 한 것은 우선 보수당이 추진한 지난해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가 가결된 충격을 꼽을 수 있다. 당시 25세 이하 청년은 잔류 지지자가 71%에 달했으나 실제 투표한 비율은 노인층보다 낮았다.
임시직이나 비정규직마저 찾기 힘든 불안정한 일자리, 대학 등록금과 학업으로 인한 빚 부담 증가, 집값과 임대료가 엄청나게 비싸고 내 집 마련 기회는 점점 없어져 가는 등 현실에 대한 불만은 청년 투표율 급등의 근본 배경이다.
여기에다 보수당이 여전히 중년과 노인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유지하는 반면 코빈 노동당 당수는 전통적인 '진보적 정책'보다 훨씬 더 진보적인 정책을 내놓고 노동당이 집권하면 당장 등록금부터 없앨 것이라고 밝히는 등 청년층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 정치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영국 싱크탱크 '레졸루션 파운데이션'의 토르스텐 벨 사무총장은 "한 번 투표한 사람이 다음 선거에도 투표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면서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청년층 투표 참여 증가는 일회성이 아니고 지속할 것으로 예상했다.
벨 총장은 따라서 앞으로 각 정당이 노인층에만 초점을 맞추던 태도에서 벗어나 청년층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 하고, 이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젊은 영국인들의 복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번 영국 총선 결과와 미국 정치에 주는 의미를 분석했다.
NYT는 '미국과 영국 청년들의 공통점'으로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정치현실 속에 산다"는 점을 들었다.
또 미국 대선에서 30세 이하 청년 유권자가 도널드 트럼프보다는 힐러리 클린턴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듯이, 영국에서도 청년들은 브렉시트를 거부하고 유럽 잔류를 원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브렉시트 국민투표 때 낙망한 영국 젊은이들은 최소한 이번엔 투표 참여로 복수했으며, 이 복수는 아마도 이제 시작인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과연 미국 민주당이 젊은 미국인들의 분노를 투표율 제고로 전환시킬 수 있을지, 그리고 트럼프의 포퓰리즘과는 전혀 다른 제러미 코빈 식의 과감하고 실질적인 포퓰리즘을 택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고 밝혔다.
지난 미국 대선 때 밀레니얼세대 투표율은 49%로 베이비부머세대의 69%보다 훨씬 낮았다.
choib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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