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 등 대학 내 비정규직 저임금·고용불안 해결요구
서울대 비학생조교, 무기계약직 전환…곳곳에서 '고용안정' 요구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서울 마포구 홍익대 캠퍼스 내 어두침침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던 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이 밝고 아늑한 공간으로 거듭났다.
홍익대 총학생회는 교내 건축동아리와 함께 지난달 27∼28일 건물 두 곳의 청소노동자 휴게실 개선 공사에 나섰다.
학생들은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은 예산 300만 원으로 직접 페인트를 칠하고 에어컨, 공기청정기, 옷걸이, 중고 냉장고 등을 들여놨다.
학생들은 이 사업에 '은화과(隱花果)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꽃이 없는 과일'을 뜻하는 무화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청소노동자를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숨어 있을 뿐인 꽃'에 비유한 것이다.
학생들이 나서 청소노동자 등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환기하는 노력도 있다. 한양대는 지난 5월 축제에서 교내 비정규직 노동자 120여 명과 함께 '동고동락' 행사를 열었다.
학생들은 청소와 경비, 주차 관리 직원들을 초대해 축제 기간에 음식을 대접하고 몇몇 학생들을 청소노동자를 대신해 청소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활동이 훈훈한 미담이 되는 것은 그만큼 청소노동자들이 처한 자리가 차갑다는 뜻이다. 11일 대학가에 따르면 여전히 많은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열악한 처우 개선을 호소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작업장에 휴게실과 세면·목욕·세탁이 가능한 세척시설 등을 갖추게 돼 있지만, 상당수 대학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냉난방이 안 되는 데다가 환기·채광시설이 불량한 곳이 대다수다.
저임금과 고용불안 등 열악한 근무환경 탓에 청소노동자와 학교가 갈등을 빚는 곳도 있다.
울산 동구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고용 보장을 주장하며 1천일이 넘도록 학내 농성을 벌여오고 있다.
농성은 지난 2014년 6월 16일 이 대학 본관 로비에서 시작됐다. 당시 청소노동자들의 요구는 시급을 기존 5천210원(2014년 법정 최저시급과 동일)에서 6천 원으로 인상해달라는 것이 골자였다.
현재 이들은 고용 승계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소속됐던 청소용역업체는 지난 2015년 5월 대학과 계약이 만료돼 현재는 새 업체가 새로운 노동자들을 고용한 상태다.
하지만 당시 울산과학대 측은 '전국 대학 중에서 최고 수준의 임금을 주고 있다'며 임금인상을 거부했다. 또 이들에 대한 고용 의무가 없고, 여력도 없다는 입장이다.
고용 형태를 바꿔야 청소노동자들의 근본적인 처우 개선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경희대는 다음 달 학교 산학협력단 기술 지주 회사 산하에 자회사를 설립해 청소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계획이다. 소셜 벤처 형태로 설립되는 자회사에는 청소노동자 135명 전원이 직접 고용될 예정이다.
서울시립대 청소노동자들은 공무직으로 정년 보장이 된다는 점에서 다른 사립대학 청소노동자들보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시립대는 2013년 서울시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따라 청소노동자 전원을 공무직으로 전환했다. 현재 청소노동자 64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서울대 비학생조교들이 '준정규직'으로 불리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며 청소노동자들을 비롯한 대학 내 '을'(乙)들의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비학생조교는 학생이 아니면서 고등교육법상 조교의 신분으로 대학 행정업무 전반에 투입돼 일하는 비정규직을 말한다.
'기간제·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적용대상이 아니어서 그간 비학생조교는 2년 이상 일해도 무기계약직 등으로 전환되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서울대와 비학생조교들은 무기계약직 전환을 위한 임금 등 노동조건에 잠정 합의하고 협약식을 열었다. 이번 비학생조교 무기계약직 전환은 다른 국립대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16일 대학노조는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공약한 만큼 기간제법을 통한 국립대 비학생조교들 고용 보장을 위한 적극적인 조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3일에는 한국해양대, 신라대, 동의대, 가톨릭대, 부산대 등의 부산 지역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부산 연제구 부산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처우 개선을 촉구했다.
이들은 "청소노동자는 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이 불안하고 비인격적 처우와 성희롱도 여전하다"며 "진짜 사장인 대학·공공기관장은 뒤에 숨어 이런 상황을 방관하거나 일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최저임금 1만 원 즉각 시행, 용역업체 교체·변경 시 고용 보장, 밥값·상여금·명절선물 등의 차별 철폐, 인권 보장, 최저낙찰제 폐지, 직접 고용 등을 요구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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