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 안 주고 성희롱까지…일러스트작가 80% "불공정계약 강요받아"
서울시, 문화예술 불공정 실태조사 결과 발표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 일러스트 작가 A씨는 교과서 삽화 업무를 맡아 작업하는 중 1컷당 많게는 20번까지 수정을 요구받았다. 많은 시간을 들여 수정 요구를 들어줬지만 이에 대한 대가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 웹툰작가 B씨는 C사와 계약을 맺고 모두 4편의 작품을 연재했다. 마지막 작품은 월 1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히트작이 됐으나 B씨가 받은 돈은 불과 400만원이었다. 계약 해지를 통보한 그에게 A사는 4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었다.
서울시가 문화예술인(만화·웹툰 작가 315명, 일러스트 작가 519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올해 2월 벌인 실태조사에서 나온 사례들이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의 지원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 파문을 겪은 문화예술인들은 대금은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작업 과정에서 성희롱까지 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12일 발표한 '문화예술 불공정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러스트 작가 5명 중 4명(79%)이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불공정계약 유형별로는 과도한 수정 요구(23.6%)가 가장 많았으며 시안비 미지급(20.2%), 일정 금액만 받고 2차 콘텐츠 창작과 사용에 대한 권리를 모두 넘기는 매절계약 강요(15.2%)가 뒤를 이었다.
시안비는 작업물 초안을 만들었지만 채택되지 않았을 경우 지급하는 비용을 뜻한다.
만화·웹툰 작가도 37%가 불공정계약을 강요받았다고 답했다. 매절계약(31.4%), 부당한 수익 배분(31.4%)에 따른 피해가 잦았다.
부당한 수익 배분에 따른 피해 금액은 만화·웹툰 작가가 평균 766만원, 일러스트 작가는 340만원이었다.
부당한 계약 해지를 당했다는 응답도 일러스트 작가가 55%, 만화·웹툰 작가는 36%로 높았다.
불공정 관행은 계약과 수익 배분에서뿐 아니라 인권침해로도 나타나고 있었다.
만화·웹툰 작가의 31%, 일러스트 작가 36%가 인권침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인권침해 유형을 따져보니 만화·웹툰 작가의 경우 욕설을 듣거나 인권 무시를 당했다는 경우가 22%로 가장 많았고 사적인 업무지시를 당한 경우는 16%였다. 성폭력(성추행·성희롱 등)을 당했다는 응답도 9.5% 나왔다.
실제로 서울시가 만화·웹툰 연재계약서와 일러스트 외주계약서에 대한 법률 검토를 한 결과 공통적으로 저작물의 2차 사용권과 관련한 불공정 조항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외출판권을 출판사에 전부 위임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특히 일러스트 분야에선 과도하게 수정·보완을 요구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작가가 수정에 응하지 않으면 작업물 수령이나 대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 불공정 조항이다.
시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관련 기관에 법 위반이 의심되는 업체에 대한 조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다음 달부터는 문화예술 불공정 사례를 수집하고 피해 구제 활동을 하는 '문화예술 호민관' 4명을 예술인 협회·단체에 파견한다.
또 예술인의 법적 지위와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의 '예술인복지법' 개정을 국회에 건의하기로 했다.
서동록 서울시 경제진흥본부장은 "열악한 창작 여건 속에서 불공정 관행까지 겪게 될 경우 창작의욕 저하로 한류 등 대중문화사업이 위축될 수 있다"며 "이번 조사를 시작으로 영화·방송·미술 디자인 분야로 실태조사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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