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어쩌자고 결혼했을까'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니체와 릴케, 프로이트의 연인인 독일 여류 작가 루 살로메는 졸혼(卒婚)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자유분방했던 루는 수많은 20세기 유럽의 지성들과 교제했고 많은 작품의 모티브가 됐지만, 결혼은 언어학자인 칼 안드레아스와만 했고 40년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루는 끝까지 그를 믿고 의지했고 안드레아스도 루의 유일한 배우자로 남았다.
졸혼의 적정 시기는 언제쯤일까. 결혼생활을 15년 정도 하고 나면 졸업장을 받아도 될까. 법적 혼인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각자 독립적인 생활을 꾸려간다는 졸혼의 정의에 비춰볼 때, 졸혼은 결혼생활의 기간이 아니라 관계의 성숙도가 관건일 듯하다.
신간 '어쩌자고 결혼했을까'(와이즈베리 펴냄)는 결혼생활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거나, 혹은 결혼생활을 유지하느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결혼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공한다.
저자이자 일본 정신의학계 권위자인 오카다 다카시는 결혼생활을 영유아기와 성장기 부모나 가족과의 정서적 결속을 통해 형성되는 애착 유형을 통해 바라본다.
결혼생활을 어렵고 힘들게 느끼는 부부 중에는 애착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부부의 어긋난 애착 유형에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람들의 애착 유형을 크게 4가지로 분류한다. 우선 양육자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자라 안정적인 애착 양상을 보이는 사람을 '안정형', 그렇지 못해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맺기 어려운 사람을 '불안정형'으로 나눈다. 그리고 이를 다시 각각 독립적이지만 깊은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회피형'과 의존적이면서 친밀한 대인관계를 원하는 '불안형'으로 구분한다.
이 가운데 '안정-회피형'과 '안정-불안형'은 대인관계를 회피하거나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어도 그 자체로 별문제는 없다. 반면 '불안정-회피형'은 이성 관계를 단순한 놀이로 봐 표면적인 관계를 맺은 채 파트너를 소유물처럼 대하고 뜻대로 안 되면 폭력을 쓰기도 한다. '불안정-불안형'은 과도하게 의존적이어서 파트너에게 심한 집착을 보이다가 관심이 식으면 곧바로 다른 상대를 찾는다.
애착 유형은 '모성 호르몬'으로 알려진 옥시토신(oxytocin)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성장 과정에서 환경 영향을 크게 받지만 유전적 요인도 있다. 애착 유형은 지속성을 갖고 있어 쉽사리 바뀌지 않지만, 30% 정도는 성인이 된 후에도 변한다고 한다.
책은 저자가 직접 상담하고 연구한 21가지의 사례를 소개하며 결혼생활을 유형화해 분석하고 나름의 처방을 제시한다. 때때로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신을 성찰하고 부부 문제를 객관화해 바라봄으로써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항상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는 노력만으로 상황을 호전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더 중요한 사실은 현대사회에서 '불안정형' 애착 유형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30~40%가량의 아이들이 이 같은 애착 유형을 보인다고 책은 지적한다.
결혼 전이라면 불안정형 애착 유형의 배우자를 선택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우선이겠지만, 사실 살아보지 않고선 다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불안정형 애착 유형을 피해가야 할 예외적인 병리 현상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없다. 확률적으로 봐도 나 자신이 불안정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불안정형 애착 유형이 급증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그에 맞는 생활방식이 요구된다고 조언한다. 결혼을 인생의 무덤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선 서로를 구속하는 전통 방식의 결혼생활에 얽매이기보다는 졸혼과 같은 대안을 모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루 살로메를 현대사회에선 흔해진 '불안정-회피형' 애착 유형으로 진단하며, 자신에게 맞는 생활방식을 찾아 행복을 누린 선구적 사례로 든다.
"이런(불안정형 애착) 유형의 사람에게 결혼이라는 틀은 너무 갑갑해서 마치 백조를 새장에 키우는 것처럼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쇠약해지고 빛을 잃는 것이 당연한 결과다."
유미진 옮김. 260쪽. 1만4천원.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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