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시장 "로마에 더 이상 난민 못받아"…그릴로 대표 "집시 단속해야"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지난 11일 이탈리아 1천여 개 도시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며 사상 첫 집권 계획에 빨간불이 켜진 포퓰리즘 성향의 이탈리아 제1야당 오성운동이 난민과 집시에 대한 배척 정책으로 지지세 결집에 나설 태세다.
오성운동 소속의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 시장은 13일 난민 분산 업무를 관장하는 내무부에 "중앙 정부는 이제 더 이상의 난민을 로마에 보내지 말라"고 요청하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
그는 "로마는 이미 충분히 난민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며 "로마에 새로운 난민 센터를 추가로 건설함으로써 초래될 사회적 갈등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작년까지 최근 3년 간 아프리카, 중동, 남아시아 등지에서 50만 명의 난민이 쏟아진 이탈리아에는 갈수록 유입 난민 수가 늘며 올해 한해 동안만 25만 명의 난민이 입국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EU)의 약속과는 달리 유럽 다른 나라들이 난민 재할당에 미온적인 자세를 보임에 따라 현재 약 20만 명이 넘는 난민이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하는 난민 센터에 머물고 있다. EU는 당초 난민 16만 명을 이탈리아, 그리스에서 다른 회원국으로 분산 배치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이달 5일 기준으로 이탈리아에서 다른 EU 회원국으로 이관된 난민은 5천694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이탈리아는 특정 지역에 부담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국 8천 개 지자체 가운데 3분의 1가량에 난민 센터를 구축, 난민을 분산 배치하고 있다.
그동안 소수의 몇몇 지자체가 난민 수용을 거부하기도 했으나, 이탈리아 정부는 이런 지자체에 대해 중앙 정부의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반발을 잠재워왔다.
그러나 수도 로마가 정부의 난민 정책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은 반(反)난민 정서가 강한 북부의 도시들이 뒤따를 선례가 될 수 있는 만큼 귀추가 주목된다.
이탈리아 정계에서는 오성운동 소속의 로마 시장이 집권 민주당의 난민 정책에 대놓고 반발하는 것은 이번 지방 선거 참패로 한풀 꺾인 오성운동의 기세를 되살리는 전략의 일환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난민에 대해 공개적인 혐오감을 드러내온 극우 정당 북부동맹과 달리 그동안 난민 문제에 모호한 입장을 취해온 오성운동은 최근 몇 년째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던 지지세가 꺾일 조짐을 보이자 난민 문제에 대한 이탈리아 대중의 피로에 편승해 난민 배척 쪽으로 방향을 잡으려한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레나토 만하이머는 로이터통신에 "이탈리아 사회에서는 난민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사회 안전을 저해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난민 문제는 오성운동이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한 이상적인 주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페 그릴로 오성운동 대표가 이날 로마 변두리의 임시 캠프에서 거주하는 동유럽 출신 집시들에 대한 단속을 촉구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그릴로 대표는 "이제 로마의 분위기는 바뀌었다"며 "무일푼이라고 주장하며 고급 차를 모는 사람, 지하철에서 아이들을 끼고 구걸하는 사람들은 이제 추방돼야 한다. 또 지하철의 소매치기범들에 대한 감시도 강화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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