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의 자녀들이 내홍 끝에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
14일 스트레이츠타임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리 전 총리의 차남 리셴양(李顯陽·60)과 장녀 리웨이링(李瑋玲·62) 여사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장남인 리셴룽(李顯龍·65) 현 싱가포르 총리를 비난하는 6페이지 분량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리셴룽 총리가 "싱가포르 정부 내에서의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악용해 개인적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그를 형제로서도, 지도자로서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리셴룽 총리가 아버지를 우상화하는 수법으로 '리콴유 왕조'를 건설해 아들 리홍이(李鴻毅·30)에게 권좌를 넘겨주려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국가기관에 의해 상시 감시되고 있다면서 현재 상황대로라면 조만간 국외로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몰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리셴양은 성명에서 "가까운 미래에 싱가포르를 떠나게 돼 마음이 무겁다. 나는 떠날 마음이 없다. 리셴룽이 내가 떠나는 유일한 이유다"라고 말했다.
이에 리셴룽 총리는 즉각 반박 성명을 냈다.
그는 "형제자매들이 사적인 가족사를 내보이는 성명을 내기로 한 데에 크게 실망했다"면서 "형제 간에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문제는 가족 내에 머물러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리셴룽 총리는 자신이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려 한다는 동생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터무니 없는 소리"라며 단번에 일축했다.
리셴룽 총리와 동생들은 작년 3월 리콴유 전 총리의 1주기 추모행사가 대대적으로 치러진 이후 1년 넘게 대립해 왔다.
리웨이링 여사 등은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영웅 숭배를 반대했을 것"이라면서 리셴룽 총리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2015년 92세를 일기로 타계한 리콴유 전 총리가 자신이 사후 우상화될 가능성을 경계해 "내가 죽거든 집을 기념관으로 만들지 말고 헐어 버리라"는 유언을 남긴 것 역시 분쟁의 빌미가 되고 있다.
리셴룽 총리는 지난 2015년 싱가포르 중심가 오차드 로드에 있는 해당 주택을 정부가 어떻게 처분하든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의 동생들은 리셴룽 총리가 아버지의 유언을 어기고 이 집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할 마음을 품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현지 전문가들은 리콴유 전 총리의 가족들이 정재계 요직을 다수 차지한 상황 때문에 앞으로도 한동안 '왕조' 논란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리셴룽 총리의 부인 호칭(何晶·64)은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홀딩스의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그에게 반기를 든 차남 리셴양은 동남아 최대 공항인 창이공항을 운영하는 싱가포르 민간항공국 이사회 의장이며, 장녀 리웨이링 여사는 싱가포르 국립 뇌신경의학원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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